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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정책은 국민 합의가 먼저다

등록일 2024-09-22 20:10 게재일 2024-09-2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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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통일 하지 말자”라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이 파문을 던졌다. 그는 19일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라면서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전대협 의장 시절 임수경을 북한에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는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통일 하지 말자”라고 외치니 많은 사람이 놀랐다. 지난 연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북한은 통일 관련 구호나 조직을 모두 없앴다. 동포가 아니라 ‘원쑤’가 된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것과 연관 짓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보수진영은 일제히 김정은 주장에 장단 맞춘다고 비난했다. 해방 정국에서 통일은 절대 가치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비한 역사전쟁은 지금도 뜨겁다. 우파인 백범까지 내세우며 통일을 강조하던 진보 진영이 갑자기 통일하지 말자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2 국가론에는 여러 가지 전략적 암수(暗數)가 숨어 있다. 분명한 것은 적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진 통일’을 주장했다. ‘평화통일’은 금기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7.4 남북 공동선언을 하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구체적인 통일정책을 처음 만든 것은 노태우 정부다. 이홍구 통일부 장관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 야당 총재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녹여냈다. 이것을 김영삼 정부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다. 자주·평화·민주 원칙과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이라는 3단계 통일 방안이다. 찬찬히 따져보면 여건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교류 협력하고, 통일을 미루자는 얘기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여정이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두 개의 나라는 아니지만, 서로의 실체를 인정했다. 유엔에 동시 가입해 국제적으로 두 나라로 인정받았다. 특수관계를 내세워 관세 등에서 국제사회의 특혜를 요구했다. 임 전 실장 발언에 놀랄 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감춘 비수와 그에 휘둘릴 가능성이 위험하다.

북한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6·25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남쪽의 좌파 단체와 학생운동권도 이에 동조했다. 전대협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 통일 한반도’는 자유의 이념으로 북한을 통일하겠다는 구상이다.

남쪽의 젊은이들은 이념 전쟁에 회의적이다. 통일을 반대한다기보다, 굳이 통일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바른언론시민연합이 지난해 4월 20·30대 남녀를 조사한 결과 ‘통일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응답이 61%, ‘꼭 필요하다’는 응답은 24%였다. 통일부와 교육부의 22년 통일교육실 태조사에서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초·중·고생은 16.2%에 불과했다. 지난해 민주평통의 청소년 대상 조사에서는 통일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은 10명 중 1명,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10명 중 7명이었다.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를 52.0%가, ‘단일국가 통일 모델’를 28.5%가 꼽았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다. 잘못된 안보 전략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적을 앞에 두고 분열하면 자멸(自滅)뿐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초당적인 노력 덕분이다. 통일·안보·외교를 다루는 자세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초당(超黨)적 대처는커녕 정략적으로 이용한다. 핵무기에 맨몸으로 노출된 위기 상황에서도 그러고 싶은지 참담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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