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섬에서한 달만 살자저 섬에서한 달만뜬눈으로 살자저 섬에서한 달만그리운 것이없어질 때까지뜬눈으로 살자이 땅 해안선에 올망졸망 떠 있는 수많은 섬, 이름 없는 섬에 들어 한가함과 무료함을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살고 싶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절절하다. 번잡하고 바빴던 일상에서 벗어나 한 달쯤 무명도에 들어 한 포기 풀꽃으로 피어나 소리 없이 그 평화로운 적요 속에 들고 싶다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10-10
왜?왜?왜?악다구니 쓰며왜 가리? 왜 가리?악다구니 써도너의 날개를 누가 기억하리왜가리!왜가리는 목이 길고 가늘며 구부러져 있는 새다. 시인은 시의 첫머리에서 왜가리의 모양이 마치 물음표(?)를 닮았음을 의도하는 시행을 배열하고 있다. 어디로 왜 가느냐고 여러 번 반복하는 시인의 목소리에서 왜가리는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우리들이 분신 같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시인
2019-10-09
슈퍼마켓 냉장 식품 코너에 냉동닭들이 수북하다비닐봉지로 쌓여 있는 육체가살아 있는 영혼보다 더 오래 버티는 듯했다옷장 안에서 가끔씩 종소리가 들렸고마음의 계단은 미끄러웠다아주 오래전 그 영혼의 이름은 무엇이었더라?시인은 냉동 창고에 밀봉되어 수북이 걸려있는 냉동 닭들과 옷장 속 차곡히 걸려있는 옷들과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현대인들을 떠올리고 있다. 밀봉된 채 영혼 없이 매달리고 얹혀 다니는 현대인들의 비애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여지없이 우리의 정신은 발가벗겨지고 냉동된 채 어딘가로 얹혀가는 냉동 닭 같은 것이 우리의 서글픈 초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시인
2019-10-07
몸이 얼어붙었다이 정적이나를 휘감아완전무결의이 녹음이나를 휘감아몸이 굳어 버린다돌멩이처럼흙덩이처럼푸르고 평화로운 지붕처럼 숲은 우리를 감싸 안아 준다. 언제든 숲에 들면 삶에 지친 우리에게 위안과 치유, 평화를 베풀어준다. 시인은 숲에 들어 느끼는 감동을 ‘자신을 휘감아 돌멩이처럼 굳어버리게 한다’라고 극대화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19-10-06
인사동 처마 끝에 낙숫물 듣는 소리방금 비둘기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가파르르 젖는다두어 행에 불과한 짧은 시에서 시인의 섬세한 시안을 본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물이 끌고 오는 낙숫물 소리에 금방 비둘기가 앉았던 자리가 젖고 있다고 표현하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잠시 머물렀던 비둘기의 기억과 추억 위로 비가 내림과 그 기억의 미세한 결과 무늬를 파르르 젖는다라고 말하며 그의 사물 인식의 눈이 얼마나 섬세한 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10-03
거기, 남보다 먼저 나서 바삐 닿아야 할고난의 세월 있으니찬이슬 속에 깜박이는 잔별빛 어깨에 받고밥 한 그릇 간다후루룩 둘러마신 물통 같은 밥통 되게 흔들며밥 한 그릇 서둘러 차운 길 간다이른 새벽 성근 밥을 챙겨 먹고 찬 이슬 속으로 서둘러 나가는 사람들을 시인은 ‘새벽밥’이라 부르며 그들에게 흐르는 고난의 세월을 생각하고 있음을 본다. 현실의 비애와 내일을 준비하는 결의가 섞인 차가운 그들의 길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10-01
수많은 별들 중의 하나인 지구지구 위의파리파리의 몽수리 공원에서겨울 햇살 비치는 어느 아침너 나에게 입 맞추고나 너에게 입 맞춘이 짧은 영원의 순간을천년만년이 걸려도다 말하지 못하리겨울 햇살 비치는 아침, 파리의 아담한 공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입맞춤을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짧은 입맞춤의 순간이었지만 영원의 순간이라고 표현할 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영원히 흘러가지 않고 가슴속에서 순간의 섬처럼 서 있을 잊지 못할 순간을 새기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9-30
사람들 사이에사이가 있었다 그사이에 있고 싶었다양편에서 돌아 날아왔다정신은 한번 깨지면 붙이기 어렵다사이는 양쪽의 영역과 영향으로부터 중도의 위치에 있는 것이어서 균형을 가질 수 있고, 한쪽으로 쏠리지 않아서 비교적 안정성이 유지되는 처지이지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양쪽으로부터의 결핍 상태에 놓이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태이기도 하다. 시인은 흑백의 이분법에 의해 재단되는 현대사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19-09-29
집에 돌아오면하루종일 발을 물고 놓아주지 않던가죽 구두를 벗고살껍질처럼 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검정 양말을 벗고발가락 신발숨 쉬는 살색 신발투명한 바람 신발벌거벗은 임금님 신발맨발을 신는다하루 종일 신발에 갇혀 있던 발, 집에 들어와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나면 홀가분한 맨발이 된다는 표현을 하는 시인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음을 느낀다. 종일 자신을 옮아 매었던 삶의 굴레들을 벗고 그 막중한 무게들로부터 벗어나 홀가분하게 자유를 누리는 시인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19-09-26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그대를 환영하며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다시 떠날 때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알고 간다면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초록빛과 사랑, 이거우주 기적(奇績) 아녀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고운 초록색의 작은 행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별이 인간의 문명에 의해 오염되고 파괴되어 이제는 거기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혐오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것을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9-25
지상과의 인연더 차가워져야 한다활시위처럼 몸 당겨겨울로 간다작살 같은 대오로하늘을 끌고 간다몸 비트는 하늘깃털처럼, 백설(白雪) 쏟아진다하얗게 눈 내리는 하늘을 날아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모습이 사뭇 장엄하다. 기러기들의 비행 대오는 작살 모양인데 그 맨 앞에는 가장 힘세고 연륜이 있는 기러기가 선도하고 그 뒤를 따르는 동료들이 울음소리로 그를 격려하며 편대를 이루어 그 먼 거리를 날아가는 것이다. 시인은 기러기들이 날아가는 겨울 하늘의 장엄한 그림 한 장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9-24
돌이 울고 있었다울고 있는 돌을 먹었다돌을 먹은 나는펭귄이 되었다배가 너무 무거워바닥에 쓰러졌다뱃속에서 돌이 울고 있었다돌과 펭귄을 연결한 시인의 상상력이 재미있고 진지하다. 돌은 삶 속에서 꺾이고 고통당하며 상처 입어 쉬 지워지지 않는 슬픔을 품고 있다. 슬픔은 펭귄의 뱃속에서 울고 있는 돌처럼 우리를 그늘지게 하며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 속성을 품고 있는 것이라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9-23
마음 스치고 간 칼날들이 그믐달로 뜬다일생 땅에 집을 짓지 못하는 칼새의 짧은 다리,긴 날개 허공에 알을 놓고 허공을 박차고 허공에서 낫을 갈고허공만이 그의 허파였던가파르고 높은 벼랑 끝에 집을 짓고 사는 칼새는 거의 모든 시간을 허공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다리는 짧고 날개는 긴 것이리라. 허공에 집을 짓고 허공에서 사랑하며 허공에서 잠자는 칼새는 낫 같은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고 오랜 시간 날 수 있는 긴 날개와 튼튼한 허파를 가졌다는 얘기를 하며 자연이든 인간이든 험난하고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적응해가는 신체 구조와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는 시인의 긍정적인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9-22
빗방울 하나가창틀에 터억걸터앉는다잠시나의 집이휘청-한다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는 삼라만상, 그 무한한 여백 속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는 집 한 채만 한 크기일 수도 있고, 집을 흔들 만큼의 무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바라보는 시인의 혜안(慧眼)이 깊고 밝다. 시인
2019-09-19
동백의 꽃말은 투신죽을 날을 알아버린 이모처럼눈 소복하게 내린 날을 골라떨어진다 멀리로도 아니고바람 없는 날, 툭뿌리께로 곤두박질한다이모부 발치에 쓰러지신이모 때문에 당신은 발등이아프셨고 동백꽃 철마다 밟혀서그 집에서 오래홀로 늙으셨다동백의 꽃말은 투신(投身)이다. 시인은 짙붉은 동백꽃이 툭툭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픈 가족사 하나를 들려주고 있다. 자살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모부 발치에 쓰러져 죽은 이모와 그 후 재혼을 하지 않고 오래 홀로 살아간 이모부의 깊은 사랑의 신의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9-18
그대 내 농담에 까르르 웃다그만 차를 옆질렀군요… 미안해 하지 말아요지나온 내 인생은 거의 농담에 가까웠지만여태껏 아무것도 엎지르지 못한 생이었지만이 순간, 그대 쟈스민 향기 같은 웃음에내 마음 온통 그대 쪽으로 옆질러졌으니까요고백하건대 이건 진실이에요마주 앉은 남녀가 차를 마시다 상대의 농담에 웃다 찻잔을 엎지른 재미난 장면을 보여주며 시인은 쏟아진 것은 차가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의 혜안에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다. 시인
2019-09-17
멕시코인들은 말하지우리에게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미국은 너무나 가까이 있다세상의 여자들은 말하네우리에게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남자는 너무나 가까이 있다시인이 말하는 멕시코와 여자는 약하고 피학적인 위치에 놓인 약자에 해당되고 미국이나 남자는 강하고 가학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본다. 이런 남성 중심, 서구 중심의 세상을 야유하며 강요되고 폭력적인 것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음을 고발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9-16
항아리를 할머니로항아리 뚜껑을 할아버지로항아리 뚜껑 위에 쌓인 눈을 백발로항아리 옆의 감나무를 세월의 몽둥이로꺾어보는 사이에 저녁이 되었다반찬도 없는데 전신이 아프다백발과 할아버지를 젖히고할머니 속의 된장이뚝배기 안에서펄펄 끓는다시인은 저물녘 된장을 끓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한 생을 떠올리고 있다. 한평생 항아리 뚜껑 같은 영감을 덮고, 아니 할아버지에게 덮여 살아온 할머니의 삶을 힘겹고 답답한 세월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프고 갑갑할 때는 그 뚜껑을 젖히고 싶었을 거라는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하는 것을 시인의 말에 잔잔한 감동이 묻어남을 느낀다. 시인
2019-09-15
하얀 입김이나뭇가지에 걸리어,내 목이 아프다.몽텡이가 목 속에서 미끈미끈 미끄러져,내 목이 뜨끔거린다.팥죽이 뿔럭뿔럭 끊는 기인 밤,나는 생각한다동지 무렵이면 뜨끈뜨끈하게아궁지에 군불을 지피시던 어머니를몽텡이는 팥죽 속에 넣어 끓이는 수수단자를 일컫는 말이다. 시인은 감기를 그 몽텡이가 몸속에 미끄러지듯 목이 뜨끔거리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뜨겁게 몸을 데워오며 몽텡이처럼 끓어오르는 감기를 앓으며 동짓날 팥죽 끓이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던 그리운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다. 그립고 눈물겨운 그림 한 장을 우리에게 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9-10
처마에서 다좇치듯 떨어들지는눈석임물 소리에 잠을 깨고는웬일인지 한여름 툇마루에서다듬이질하시던 어머님 생각이른 봄 고드름에 대한 생각도다른 어떤 생각도 아니라 바로무더운 한여름 툇마루에서다듬이질하시던 어머님 생각리진은 함흥 출생으로 구 소련으로 망명한 시인이다. 이른 봄 눈 녹은 물이 섞인 차가운 물이 눈석임 물인데 이것은 소멸의 흔적이다. 시인은 툇마루에서 다듬이질을 하시며 자식과 가정을 위해 한 생을 바치고 허물어지고 녹아서 소멸해가는 빛나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음을 본다. 그 어머니를 햇빛에 녹아내리는 눈석임 물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9-09
어머니가 식탁에서 수저를 떨어뜨리면어머니가 그것을 주워드신다내가 식탁에서 수저를 떨어뜨리면어머니가 다시 그것을 주워 주신다내가 부주의하게 떨어뜨린 수저의 개수만큼허리를 굽히신 어머니어머니가 떨어뜨린 수저뿐만 아니라 슬하의 자식들이 떨어뜨린 수저들을 어머니는 허리 굽혀 주워주신다는 사소한 모티브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그 위대한 모성을 얘기하고 있다. 어쩌면 어머니는 세상의 바닥에 가장 가까이 있는 분이 아닐까. 어머니는 연약하지만, 그 정신은 강하다. 끊임없이 허리를 구부려 떨어뜨린 수저를 주워올 리는 세상의 어머니들은 위대하고 강한 존재가 아닐까.시인
2019-09-08
그대 곁에 다가오는따뜻한 슬픔 기억하라생의 한가운데불현듯 찾아온 외로움해일(海溢)처럼 두려울 때기억하라그대 가슴 헤집고 들어오는어린아이 같은 따뜻한 슬픔을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정결하고 용기 있는 삶의 자세를 다져온 시인은 불현듯 가슴 한가운데로 치고 드는 외로움이랄까. 깨끗한 슬픔, 따뜻한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따뜻한 슬픔이야말로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참된 삶의 길로 이끌어 주는 순수한 에너지가 될 거라는 확신에 찬 시인 정신을 본다. 시인
2019-09-05
그곳에 가면 네가 있을 것만 같다바람에 부서지는 섬들과 모래톱 사이로 스며드는따스한 물방울들, 그곳에 꼭 네가 있을 것만 같다어젯밤에는 바람 속으로 망명하는 꿈을 꾸었다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잎들이 밤새도록 내려서럽도록 그리운 너의 안부를 덮어주었다시인은 왜 새들은 목포에 가서 죽는다고 말했을까.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처럼 황량하고 낯선 도시와 산하를 날며 살다가 죽을 땐 가장 그리워하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시인은 떠올리고 있다. 우리도 그곳에 가면 꼭 그리워하는 네가 있을 것만 같은 곳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어떤 서러움 같은 것이 차오르는 아침이다. 시인
2019-09-04
밤비에 씻긴 눈에새벽별로 뜨지 말고천둥번개 울고 간 기슭에산나리 꽃대궁으로 고개 숙여 피지도 말고꽃도 별도 아닌 이대로가 좋아요이 모양 초라한 대로 우리이 세상에서 자주 만나요앓는 것도 자랑거리 삼아나이 만큼씩 늙어가자요아픈 친구의 문병 길에서 느낀 소회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병이 더 깊어져 이승을 떠나 샛별로 뜨지도 말고, 산나리 꽃대궁으로도 피어나지 말고 병을 받아들이고 병과 함께 이승의 남은 시간을 건너가자고, 나이 만큼씩 늙어가자고 아픈 친구에게 보내는 위안의 편지 한 장을 읽는다. 시인
2019-09-03
적요 가운데 돌이 박혀 있다적요로도 모자라 몸을 비틀며항해사의 만 곱 아승지 저쪽그곳에서 날아온 빗방울을 얼싸안고입 맞추고 있다 입 맞추고 있다오 내 사랑이여‘만 곱 아승지 저쪽’이라는 공간적 거리는 무한한 시간적 거리다. 시인은 고요한 사랑과 그 속에 깊이 박혀있는 돌처럼 깊이 스며 있는 사랑의 슬픔을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9-02
무슨 고민이 저리 많은지민들레는 빡빡머리가 되어 담장 밑 양지쪽에 쭈그리고 있습니다가끔씩 머리통이 박살 나도록 담장을 치고받으며기구한 사연 더 들어달라는 듯 앙탈을 부립니다제 자식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길마저 끊긴 막막한 땅에서도란도란 웃음꽃 필 가정을 꾸미고 살 곳은 어디입니까하소연이라는 제목을 유추해볼 때 민들레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을 모티프로 삼아 쓴 시로 여겨진다. 자식 키우며 살아온 기구한 어머니의 한 생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길마저 끊긴 막막한 땅 같은 험난한 세상 길을 가야 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의 절절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9-01
난을 기르듯여자를 기른다면오지게 귀 밝은요즘 여자가 와서내 뺨을 치고서파르르르 떨겠지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짧은 시다. 난을 기르듯 여자를 기른다면 뺨을 맞는다는 표현이 재밌다. 정성을 다해 난을 기르듯, 사랑하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창가에 가만두고 눈빛만 주고 방관하여도 뺨을 맞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유쾌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시인
2019-08-29
풀꽃 한 송이도 피어날 때소리를 낸다그건 어른들만 모르는 일일 뿐다섯 살 아이의 눈에도 보이는 일이다짧은 몇 행의 시에서 시인이 뜻하고자 하는 것은 깊고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 ‘풀꽃 한 송이도 피어날 때 소리를 낸다’는 표현에서 소리는 일반적이고 물리적인 소리를 의미하진 않는다. 감각적인 소리를 넘어 존재하는 가슴속의 소리가 아닐까. 초월적이고 신기한 소리다.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들은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형태나 소리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존재의 내면에는 깊이 스며 있는 진정한 모습과 소리가 있다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8-28
내가 책을 읽는 동안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바람은 내 어깨 위에자그만 그물침대 하나를 매답니다마침내 곁을 지나가는 시간들이라면누구든지 그 침대에서푹 쉬어갈 수 있지요그 중에 어린 시간 하나는나와 함께 책을 읽다가성급한 마음에 나보다도 먼저책장을 넘기기도 하지요그럴 때 나는잠시 허공을 바라보다바람이 좋은 저녁이군, 라고 말합니다어떤 어린 시간 하나가내 어깨 위에서깔깔대고 웃다가 눈물 한 방울툭 떨구는 줄도 모르고‘사평역에서’라는 서정성 높은 시를 발표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던 시인의 동요적인 상상력을 본다. ‘바람은 어깨 위에 그물침대를 매달고, 시간은 그 침대 위에 쉬어간다’는 표현에서 시인은 엄청난 속도에 얹혀가고 떠밀려가는 현대사회의 분주함을 야유하며, 여유롭고 느리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의 한 자락을 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8-27
봄 바다 아득한 하늘에검은 점 서넛날아가고 있었다날아가는 서넛의 검은 점이날아갈수록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다가하나가 되어언젠가 그날처럼내 가슴으로 돌아와 박혔다사랑의 피묻은 화살로시인이 말하는 봄 바다 아득한 하늘에 날고 있는 검은 점 서넛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인이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이루고 싶은 열망이랄까 꿈이랄까 동경해오던 그 무엇이 아닐까. 나이 서른 마흔을 지나며 그 열망과 동경은 성취하지 못하고 아쉬움과 허탈함으로 변하고,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가슴 속으로 날아와 박힌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