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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삶의 무늬와 얼룩을 받아낸 ‘인간의 언어’… 현명석 시집 ‘인력시장’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6-20 09:23 게재일 202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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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노동자 출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출간
기교와 미학적 안전지대 벗어나 삶의 현장 길어 올려
사투리·일상어로 엮어낸 노동자들의 절절한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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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석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인력시장’ 표지. /문학공간 제공

문학의 수사나 정교한 미학적 기교 대신, 거친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묵직한 진실을 담아낸 시집이 출간됐다. 철강노동자 출신 현명석 시인이 펴낸 세 번째 시집 ‘인력시장’(문학공간)이다. 시집은 제목이 직관적으로 암시하듯, 인력시장을 오가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우리 이웃들의 소박한 애환, 그리고 척박한 일상 속에 숨겨진 인간적인 온기를 시적 언어로 포착해 냈다.

시인은 자신의 시 세계를 다름 아닌 ‘일상생활 시’라고 규정한다. 세련되게 다듬어진 문법에 갇히기보다, 삶의 무늬와 결, 그리고 삶이 남긴 얼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언어를 지향하겠다는 선언이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이 능숙하고 세련된 시인들의 언어를 두고 “모방하고 훔쳐 온 시어”라고 간파했듯, 현 시인은 매끄러운 수사학이 보장하는 ‘미학적 안전지대’를 과감히 벗어난다. 대신 그 자리에 거칠지만 정직한, 진실한 문법으로 쓴 마법 같은 언어들을 채워 넣었다.

이번 시집은 제1부 ‘한 편의 서정이 되리’, 제2부 ’세상 모든 게 사라져도’, 제3부 ‘말이 필요 없겠지’, 제4부 ’사람은 땅에서 산다’ 등 총 4부에 걸쳐 시인의 깊은 시선이 담긴 104편의 작품을 촘촘히 엮어냈다.

이러한 시인의 시각은 언어와 삶의 관계를 탐구하는 태도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전통적인 운율 체계나 시의 행과 연 구분 같은 형식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말 고유의 힘에 주목한다. 서민들의 정서가 깃든 삶의 공간을 다루는 식이다. 특히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 ‘할머니’에서는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정제되지 않은 지역의 언어가 지닌 생명력과 투박한 정서를 시 속에 고스란히 녹여냄으로써, 현대 시가 지닌 형식적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뜨린다.

노동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시인의 이력은 시집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다. 시집 속 작품들은 목로주점에 앉아 술병이 구르듯 외로움에 취하고,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뜯어먹는 인력시장 노동자들의 영혼을 애타게 노래한다. 노동과 생계, 사랑과 외로움이 뒤섞인 서민들의 삶은 단순한 기록이나 관찰에 그치지 않고, 가슴을 울리는 절절한 노래로 승화된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드레르가 “시인은 세상의 적”이라고 말하며 시가 삶을 직접 바꾸지 못하는 한계를 자책했을지라도, 현 시인은 인간이 손에 쥔 유일한 무기인 ‘말’을 통해 세상 변두리에 머무는 존재들을 시의 중심부로 불러들인다.

그의 시어 속에는 포도알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애정 어린 사랑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 하면, 때로는 이성의 테두리를 벗어난 본능적인 광기가 번뜩이기도 한다. 완숙한 기교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체험이 주는 힘과 인간적인 진정성이 독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이유다.

푸르른 여름 하늘 아래, 지치지 않고 날아오르는 제비처럼 시를 사랑하고 시로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의 날갯짓은 멈추지 않는다. 쓸쓸하고 스산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에게, 현명석이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활 시어’는 따뜻하고도 강인한 혼불로 다가갈 것이다.

이상규 평론가는 '현명석 시인의 생활 시어 문법'이라는 해설을 통해 현명석의 시를 미학적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진실한 문법으로 쓴 마법의 언어이자 삶의 무늬와 얼룩이 묻어나는 ‘인간 시인의 언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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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석 시인. /문학공간 제공

저자 현명석 시인은 1960년 대구에서 태어나 평생 건설 현장에서 철근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타고난 시심을 숨길 수 없어 작업 틈틈이 시작(詩作) 활동을 해왔다. 2006년 ‘문예운동;(봄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꽃', ‘파미르’ 등이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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