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동학문학제 행사 일환으로 유적지 탐방
대구문화유산지킴회 회원 42명은 지난달 28일 상주동학문학제가 주관하는 수운 최제우의 유허지 여시바윗골 초당(울산)과 동학관, 그리고 태화강 국가 정원을 다녀왔다.
유네스코 등재를 목적으로 하는 상주동학문화제는 올해 10회째로, 경상북도와 상주시 후원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올해는 ‘수운의 발자취 디카 글에 담다’를 주제로 학술대회와 수운 최제우 유적지 탐방 등으로 다양하게 준비를 했다.
첫 번째로 지난 5월 21일 동학발상지 용담정(경주)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문지회원들과 희망자들이 수운의 수도처인 여시바윗골을 다녀왔다. 3번째 행사는 이달 11일 수운의 피화처 은적암(남원), 4번째는 수운의 순교지인 대구의 관덕정과 경상감영공원의 옥터, 그리고 달성공원의 동상을 둘러볼 계획이다.
여시바윗골로 출발하던 날, 버스에 탑승한 상주동학문화재단 김문기 이사장은 인사말을 전한 뒤 이날 행사 일정과 동학 교주 최제우에 대해 설명했다.
최제우는 동학(천도교)의 창시자 겸 제1대 교주로 호는 ‘수운(水雲)’이다. ‘경주 최부자집’의 비조인 최진립의 7대손이다. 족보에는 최진립의 맏형 최진흥의 7대손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6대조 최동길이 본래 최진립의 넷째 아들로 후사가 없던 큰아버지 최진흥의 양자로 입적되었기 때문이다.
최제우는 순조 24년(1824) 10월 경상도 경주부 현곡면 가정리에서 아버지 최옥(崔鋈)과 셋째 부인인 어머니 곡산 한씨(谷山 韓氏)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최옥은 일찍이 정실부인 연일 정씨, 둘째 부인 달성 서씨 등과 혼인하여 두 딸을 두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하여 결국 첫째 남동생 최규(崔珪, 1770-1841)의 장남 최제환(崔濟寏)을 입양했는데, 최제우는 그 후 후실 곡산 한씨를 들여 낳은 자식이다. 그의 아명은 최복술(崔福述)이고 초명은 최제선(崔濟宣)이다.
수운은 10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7세에는 아버지도 여의었다. 이후 1842년 19세, 경상도 울산도호부(현 울산광역시) 출신의 월성 박씨와 결혼하였으나 일정한 생계 방편이 없었다.
31세까지 10년 이상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유불선(儒佛仙), 서학(西學), 무속(巫俗), ‘정감록’과 같은 비기도참사상 등 다양한 사상을 접하는 동시에 서세동점과 삼정문란(三政紊亂)이라는 이중의 위기에서 고통 당하는 민중의 참담한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
32세에 수운은 우연히 ‘을묘천서(乙卯天書)’라는 비서를 얻어, 신비 체험을 한 끝에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근처에 있는 천성산 자연 동굴에 들어가 49일 기도를 했다. 36세가 되던 해에 오랜 유랑 생활과 처가살이를 청산하고 고향 용담으로 돌아와 정착하였다.
고향에 정착한 지 1년 뒤, 1860년 수운은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하기에 이른다. ‘천사문답(天師問答)’이라고 불리는 하늘님과의 문답 끝에 1860년(철종 11년) 천주 강림의 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시하였다. 최제우는 자신의 신내림이 꿈은 아닌가 하면서 1년을 다시 수행하고서 그때 얻은 가르침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고 철종 12년 6월부터 비로소 본격적으로 동학의 주문과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포교하기 시작했다.
동학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철종 13년 경주부 관아에 체포됐으나 제자들이 탄원으로 석방된다. 이후 동학 활동을 지속했다가 철종 14년에 다시 체포되었다. 최제우는 체포된 채로 압송되어 경기도 과천현까지 갔다가 철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여 조정이 혼란해진 탓에 다시 경상도 대구도호부에 있던 경상감영으로 이감되었다.
해가 바뀌어 고종 1년(1864) 음력 3월 10일 경상감영 관덕정 뜰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41세로 제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이야기를 듣는 사이 여시바윗골에 도착하여 을묘천서 유래를 듣고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은 비빔밥에 된장과 물도 같이 들어 있었다. 끼리끼리 모여서 소풍을 온 기분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대화강 국가정원에도 들렀다.
이솔희 상주동학사무국장(시조시인)의 차근한 안내에 모두 감동들 했다며, 수고의 박수를 보냈다. 또 황태원 문화재지킴회부회장(82)은 오늘 좋은 공부였다며, 행사를 주관한 단체에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즐겁게 공부한 하루였다.
/안영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