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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 산책) 그늘집이 있는 농장

등록일 2026-05-31 16:01 게재일 2026-06-0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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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종현 시민기자

“어이, 방 기자 지금 어디야?”

주말 오후, 느닷없이 걸려 온 친구의 전화 한 통. 나는 기다렸다는 듯한 목소리로 짐짓 거만스럽게 대답했다. “응, 나 지금 그늘집에서 쉬는 중이야.”

순간 전화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숨을 고르는 듯한 그 찰나의 침묵 뒤에, 친구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튀어 올랐다. “뭐라고? 그늘집? 야, 너 언제 골프장 회원권 끊었냐? 방기자, 이제 출세했네! 어디야, 팔공이냐, 경산이냐?”

나는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야, 인마. 우리 집 옥상이야. 이름하여 ‘방기자 CC’ 모르냐?”  “뭐어어어? 옥상이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그 웃음 속에는 놀람과 허탈함, 그리고 약간의 부러움까지 뒤섞여 있는 듯했다. 하긴, 골프장에서 라운딩하다가 잠시 쉬는곳을 ‘그늘집’이라 부르니, 친구로서는 내가 어느새 필드 위에서 ‘나이스 샷’을 외치는 줄로 착각했을 법도 했다.

사실 우리 집 옥상에는 멍석 한 장만한 작은 텃밭이 있다. 그 옆에는 내가 손수 망치질해 만든 투박한 평상이 놓여 있다. 남들이 보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집도 있는데 왜 굳이 옥상에서 저러고 있나.” 하지만 그 물음은 이곳의 비밀을 모르는 이들의 순진한 궁금증일 뿐이다.

내가 이곳을 ‘농장’이라 이름 붙이고, 평상 위에 차광막 하나 얹어 ‘그늘집’이라 부르는 순간,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나는 더 이상 도심의 평범한 시민이 아니다. 수만 평의 대지를 거느린 도시의 부농이자, 한가로운 라운딩을 즐기는 골프장 주인이 된다.

상상력이라는 작은 씨앗 하나가 삶의 지평을 얼마나 넓혀주는지, 이 옥상은 날마다 나에게 가르쳐준다. 텃밭의 작물들도 제법 의젓하다. 한쪽에서는 고추와 경상도 사내의 기개를 닮은 부추가 파릇파릇한 기운을 뿜어내고, 창상치 양양치도 있고 그 곁에는 울릉도에서 건너온 취나물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록 흙의 양은 적어도, 그 생명의 기운만은 결코 작지 않다.

살평상에 앉아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여름밤,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벌러덩 누워 수박 한 조각과 옥수수를 베어 물던 그 시절.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이야기에 코끝이 찡해지다가도, 이내 할머니의 구수한 옛이야기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혹여 손주가 모기에 물릴까 염려하여, 거칠어진 손으로 부채를 설렁설렁 부쳐주시던 할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 부채 바람은 세상 어떤 에어컨보다 시원했고, 그 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달빛 아래 헛간채 지붕 위 하얗게 피어나던 박꽃 기억은, 이제 이 옥상 그늘집 위로 겹겹이 내려앉는다.

지금 나는 회색빛 도시의 한복판, 옥상 위 작은 텃밭에 앉아 있다. 그러나 마음의 넓이는 어느 18홀 골프장보다도 광활하다. 갓 따온 풋고추 한 줌에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면, 그 순간은 그 어떤 호화로운 라운딩보다도 풍요롭다. 이름하여 ‘황제 라운딩’이다.

해 질 녘이 되면, 빌딩 숲 사이로 붉은 노을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금상치 잎사귀 위로 스며드는 저녁 햇살은 골프장의 푸른 잔디보다도 더 눈부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도심의 소음은 어느새 멀어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그것은 분명 어린 시절, 할머니의 부채 바람을 타고 오던 그 소리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쉬어 가는가. 그것이야말로 삶의 깊이를 가늠하는 잣대가 아닐까.

비록 멍석 한 장 크기의 작은 농장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매일 마음의 풍년을 맞는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풍요로운 그늘집의 주인으로 살아간다.

/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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