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문신 서침의 공덕을 기려 붙인 이름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도 한낮 더위는 여름 같은 늦은 봄. 달성공원에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따 부른 나무가 있다고 하기에 찾아 나섰다. 궁금했던 그 나무의 이름은 ‘서침(徐沈)나무‘다. 그 나무는 공원 가운데 대한민국 어린이헌장비 옆에 심어져 있었다. 회화나무 하면 될 것을 왜 서침나무라 했을까.
나무에 사람 이름을 붙인 배경을 대구시 전 녹지과장인 이정웅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구시가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으로 많은 나무를 심었지만 도시 확장 등의 이유로 매년 많은 노거수들이 훼손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구시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 ‘역사 속의 인물과 나무 사업’이다. 쉽게 말하면 대구를 빛낸 역사적인 인물과 연관이 있는 노거수를 발굴하자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붙여 노거수를 보호하고, 시민들의 지역에 대한 자긍심도 높여보자는 것이 취지였다는 것이다.
서침나무도 그 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전 녹지과장은 당시 ‘역사속의 인물과 나무’ 사업을 총괄한 사람이다.
서침나무 이름이 붙여진 달성 서씨인 서침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호는 구계다. 세종 때 조정에서 서침에게 국방상의 필요에 의해 고려 중엽 이후 서씨들의 세거지였던 달성(현 달성공원)을 나라에 헌납하면 포상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서침은 달성을 헌납하는 조건으로 포상 대신 대구지방에서 거둬들이는 환곡(還穀:흉년이나 춘궁기에 곡식을 빈민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이를 환수하던 제도)의 이자를 줄여줄 것을 건의해 성사시켰다.
환곡의 이자 때문에 고통받던 가난한 백성들의 짐을 덜어준 서침의 높은 공덕을 기리기 위해 회화나무에 서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회화나무 안내 간판에 적혀 있는 수령은 300년이다. 높이는 20m가 넘는다. 가슴높이 둘레는 3.2 m다. 나무의 생육상태는 양호하고 잎은 무성하다. 공원에 있어 보호받기에 알맞다. 줄기는 5m 정도의 높이까지 곧게 뻗었다가 가지가 사방으로 퍼졌다. 백성을 생각한 서침의 정신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공원에서는 공원을 찾은 시민들의 휴식처를 위해 주변에 벤치도 마련해뒀다. 여기서 야외 결혼식도 가끔 열린다고 한다. 동행한 대구문화재 지킴이 손태규 회원은 여기가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곳이라고도 설명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달성토성은 261년(신라 첨해이사금 15)에 달벌성을 쌓고 극종을 성주로 삼았다고 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달성 축조기록이로 여겨진다. 지리지에 따르면 돌로 쌓아 둘레 944자, 높이 4자에 이르고 성 안에는 우물과 연못이 있다.
그런데 1968년의 조사 결과 성벽은 흙으로 쌓았으나 상층부에 석괴들이 노출된 것으로 보아 토석으로 쌓은 것 같다고 했다. 토성은 1963년 10월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었으며, 공원은 1965년 2월 2일 조성되어 1969년 8월에 개장되었다.
이름은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 또는 달구화에서 유래되었으며, 삼국시대 말기에 축성되었다. 이 성곽은 고대부터 대구현의 관아로 사용되었다. 토성의 면적은 0.66㎢, 성벽길이 1.3km, 높이 5~12m이고, 동쪽에 성문이 있다. 1970년 5월 공원 내에 포유류 31종, 조류 63종이 있는 동물원(면적 9,173㎡)을 조성하여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되며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시민의 휴식공간은 물론 대구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유적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영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