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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깨우는 푸른 정신⋯ 영주가 틔운 ‘선비’라는 꽃

김세동 기자
등록일 2026-05-20 10:31 게재일 2026-05-2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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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실천의 조화 ‘수기안인’부터 세계가 주목하는 K-선비의 발상지까지
소수서원에 깃든 정신적 유산과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의 현대적 가치 조명 
선비, 정신적 귀족이자 도덕적 지성인·맑은 가난과 깊은 사유의 조화
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인 영주 소수서원 전경.  /영주시 제공

선비는 단순히 과거를 준비하던 유교 지식인을 넘어, 학문적 성취와 도덕적 실천을 일치시키려 노력한 지성인을 뜻한다. 특히 영주는 한국 성리학의 뿌리이자 선비 정신의 정수가 서린 곳으로 이곳의 선비들은 한국 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루었다.

 선비가 추구한 정신세계는 내명외단(內明外斷)이다. 선비들의 내면은 철저한 자기 수양과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가득 차 있었다.

선비 정신의 핵심은 ‘경(敬)‘이다. 이는 깨어있는 정신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고 타인을 공경하는 자세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해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다.

의(義)와 지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지 않은 일에는 타협하지 않는 대나무 같은 기개를 중시했다. 이는 사림(士林) 정신으로 이어져 권력의 부정부패를 견제하는 비판 정신의 뿌리가 되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박한 삶 속에서 진리와 자연을 벗 삼아 즐거움을 찾는 여유로운 정신세계를 지향했다.

영주시가 수백 년간 지켜온 ‘선비 정신’이다. 한국 성리학의 발상지이자 선비의 본향인 영주를 통해 선비의 삶과 정신,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짚어본다. 

 ◇선비란 무엇인가: 정신적 귀족이자 도덕적 지성인

선비는 단순히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지식 계급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선비는 학문을 통해 우주의 이리를 깨닫고, 그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며 인격의 완성을 꿈꿨던 도덕적 지성인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수기안인(修己安人)이라는 네 글자로 압축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닦고(수기), 그 닦여진 덕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평안하게 하겠다(안인)는 의지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맞닿아 있으며 개인의 영달보다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했던 선비만의 고결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선비의 생활상: 맑은 가난과 깊은 사유의 조화

선비의 하루는 엄격한 자기 절제와 학문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충실함을 택했던 그들의 생활상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선비에게 사랑방은 단순한 거실이 아니었다. 경전을 읽고 동료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지식을 삶의 지혜로 승화시키는 학문의 전당이었다. 이들은 문자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문자가 담고 있는 도덕적 실천력을 몸소 익혔다.

선비의 방에는 문방사우(종이, 붓, 먹, 벼루) 외에 화려한 장식품이 드물었다. 의복 역시 늘 깨끗하고 단정하게 유지하되 소박함을 잃지 않았다. 이는 겉치레보다 내면의 풍요를 중시했던 그들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향촌 사회에서 선비는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평소에는 예학을 바탕으로 마을의 질서를 바로잡고 흉년이 들면 자신의 곡간을 열어 굶주린 이웃을 돌보는 등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당연한 의무로 여겼다.

 ◇영주 소수서원: 선비 정신의 요람이자 제도적 완성

영주 풍기에 위치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이러한 선비 정신이 어떻게 제도적으로 정착하고 확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소다.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시초다. 이후 퇴계 이황 선생의 요청으로 명종 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편액을 하사받으며 국가가 인정한 최초의 사립 고등교육기관이 됐다.

고려 말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영주 출신 회헌 안향 선생을 배향(제사)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는 선비들이 학문의 계보와 정통성을 얼마나 숭상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수서원은 공부하는 공간(강학)과 스승을 기리는 공간(제향)이 한 울타리에 공존한다. 이는 지식 전달에만 치중하지 않고, 선현의 인품을 직접 닮아가려 했던 선비 교육의 핵심 모델을 보여준다.

소수서원 입구에 군락을 이룬 학자수, 학자수는 선비의 기개와 절개, 학문의 태도, 유생들의 기숙사인 지락재·학구제를 향해 있어 500년 동안 서원의 글 읽는 소라에 귀를 기울인 소나무로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 전해진다. 경자바위는 선비의 제1덕목인 다음다스린다는 뜻과 단종복위와 관련된 정축지변과 원혼 위령의 뜻을 담아 새겨졌다 전해진다.  /영주시 제공

서원 입구의 울창한 소나무 숲 학자수와 취한대 앞 바위에 새겨진 경(敬) 글자는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닦고 학문에 정진했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유산이다.

1543년부터 1888년 까지 소수서원에 입원한 학생들은 대략 4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소수서원 출신 대표 선비로는 월천 조목(1544년 소수서원 입원), 송간 황응규(1546년 소수서원 입원), 초간 권문해(1551년 소수서원 입원), 약포 정탁(1553년 소수서원 입원), 학봉 김성일(1560년 소수서원 입원),백암 김륵(1563년 소수서원 입원), 성오당 이개립(1567년 소수서원 입원), 만취당 김개국(1569년 소수서원 입원), 여헌 장현광(1581년 소수서원 입원) 등이다.

◇조선 시대 영주(풍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 대표적 선비

소고 박승임(1517~1586): 이황의 문인으로 대사간 등 여러 청요직을 거친 문신이자 주리론 경향의 학자이다. 과묵한 성품으로 성리유선 등을 저술하고 구산정사에 제향 되었다.

금계 황준량(1517~1563): 이황의 문인으로 성주목사 등을 지냈다. 단양군수 시절 단양 진폐소를 올려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하고 10년간 면세 혜택을 이끌어내 고을을 회생시켰다.

송간 황응규(1518~1598): 청도와 단양군수 재임 시절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퇴임 후 고향 풍기로 돌아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량을 바치고 향병대장으로 의병 활동에 헌신했다.

백암 김륵(1540~1616): 이황의 문인으로 영월군수 시절 단종의 묘를 정비해 고을의 화를 막았다.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관찰사 등으로 활약하며 민생을 구제하고 명나라에 외교 사절로 다녀와 일본의 재침을 막는 성과를 올렸다. 시호는 민절이다.

이들은 모두 관직에 몸담으며 선정을 베풀고 국난 극복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어받아 지역 유학 발전에 기여한 영주의 대표적인 명현들이다.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 K-선비의 현대적 부활

영주선비문화축제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선비문화와 정신을 이어주기 위해 다양한 체험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도 한국 전통문화를 알려주기 위한 공간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영주시 제공

영주시는 매년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를 개최하며 선비 정신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 축제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행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뿌리를 찾는 소통의 장이다.

축제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성품을 되찾는 인성 회복의 장을 지향한다. 성리학의 본향인 영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알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박물관에 갇힌 박제된 문화가 아닌, 선비세상과 선비촌을 통해 직접 입고 먹고 즐기는 체험형 문화 콘텐츠로 거듭나고 있다. 

어린이 선비 선발대회와 전통 제례 시연 등을 통해 나를 닦고 남을 평안케 하는 실천 철학을 전파한다. 화려하기만 한 축제가 아닌 선비의 고결한 기개와 멋을 담은 품격 있는 축제를 통해 영주시를 대한민국의 정신문화 수도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나침반, 선비 정신

오늘날 영주가 강조하는 선비 정신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내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 그리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가 바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현대적 선비의 모습이다.

영주 소수서원과 선비문화축제는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고귀한 정신이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한다. 선비 정신은 단순한 유교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가장 품격 있는 삶의 나침반이다. 

영주가 틔워낸 이 푸른 정신의 꽃이 현대인의 깊은 향기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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