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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아동 교육의 일상 기록”···한국국학진흥원,‘성재일기’로 본 배움과 돌봄의 풍경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4-27 10:57 게재일 2026-04-2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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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일기’(1577년·선조 10년). 봉화금씨 성재종택 기탁자료. /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성재일기’에는 금난수의 네 아들 경(憬)·업(𢢜)·개(愷)·각(恪)의 독서 과정, 과거 응시 준비, 스승을 찾아가 배우는 장면 등이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아동 교육이 집 안에 머무르지 않고, 책과 스승, 친족을 중심으로 한 학문적 네트워크 안에서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1576년 기록에는 셋째 아들 금개가 이황의 손자 이안도에게서 ‘고문선’ 전질을 빌려온 사실이 등장한다. 같은 해 8월에는 첫째 금경과 둘째 금업이 별시 응시를 위해 서울로 길을 떠났다가 9월에 귀가한 내용도 담겼다. 이듬해에는 막내 금각이 ‘논어’ 대문을 처음 읽기 시작하고, 둘째 금업이 봉화현에서 조목에게 ‘고문진보’ 후집 내용을 묻는 장면 등이 이어진다. 이는 독서, 과거 준비, 사승 관계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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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일기’ 표지. 봉화금씨 성재종택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1580년에는 이동 중 학업이 지속되는 모습도 기록돼 있다. 금난수는 막내 금각과 함께 길을 나섰으나, 금각이 학질을 앓아 용안역에 머물렀다. 이후 회복 과정에서 ‘사략’을 하루 10장씩 외우며 학업을 이어갔고, 한 권을 마친 뒤 다음 권으로 넘어가는 학습 과정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1585년 기록은 가정 내 교육 지원의 밀도를 보여준다. 금난수는 아들 금각이 읽을 ‘강목(綱目)’을 직접 필사했고, 금각은 이를 바탕으로 매일 15장 안팎을 읽고 암송했다. 공무와 제사, 손님맞이로 바쁜 상황에서도 책을 직접 써 내려가며 학습 기반을 마련한 점이 특징이다.

1586년에는 금각이 허전한에게 나아가 배우는 장면이 기록돼 있다. 그는 성산에 머물던 스승을 찾아 한 달 가까이 학문을 익힌 뒤 귀가했다. 이는 자녀 교육이 가정 내 지도뿐 아니라 적절한 스승과 학습 환경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확장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국국학진흥원 한승일 미래전략실 연구위원은 “'성재일기'는 아이들이 책을 읽고 과거를 준비하며 스승에게 배우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라며 “어린이날을 계기로 전통사회에서도 자녀의 배움이 중요한 일상이었음을 함께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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