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학명·국가 도감 기록 오류 등 ‘생물 주권’ 사각지대 방치 “잎보다 먼저? 늦게?” 데이터 관리 부실... ‘울릉앵(鬱陵櫻)’ 명칭 정립 시급 미 워싱턴 DC서 강인함 입증된 ‘생존왕’... 정작 고향에선 멸종위기 ‘적색경보’
매년 봄, 연분홍빛 설렘이 국토 동쪽 끝 울릉도를 물들인다. 하지만 무심코 즐기던 이 벚꽃의 정체를 두고 역사적·식물학적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화려한 자태로 봄을 알리는 이 나무는 흔히 알려진 일본산 왕벚나무가 아닌, 전 세계에서 오직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대한민국 특산 고유종 ‘섬벚나무’다. 독도의 모도(母島)인 울릉도가 빚어낸 이 소중한 생물자원을 이제는 ‘진짜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섬벚나무의 비극은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은 울릉도에서 발견한 표본에 Prunus takesimensis Nakai라는 학명을 부여했다. 종소명 ‘타케시마(takesimensis)’는 당시 일본이 울릉도를 부르던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 백과사전 등에는 여전히 한자어 ‘죽도앵(竹島櫻)’이 병기되고 있어, 현재 독도를 다케시마라 주장하는 일본의 억지 논리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심지어 국가 기관인 국립수목원의 도감조차 1916년 일본 학자 이시도야 츠토무(石戸谷勉)의 채집 장소를 자생지가 아닌 ‘울릉읍 독도리’로 잘못 기재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현재는 ‘울릉도 특산’으로 수정됐으나, 국가 생물 주권 관리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 대목이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ITIS)의 데이터 관리 실태는 더 심각했다. 같은 페이지 내 ‘형태’ 항목에서는 꽃이 “잎보다 늦게 피고”라고 설명하는 반면, 바로 아래 ‘특징’ 항목에서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벚나무류 중 가장 빨리 개화한다”라고 기재돼 있다. 꽃이 잎보다 늦게 피는 것과 먼저 피는 것은 식물 분류상 완전히 반대되는 형질이다. 국가 공인 정보조차 한 페이지 안에서 상반된 내용을 동시에 제공할 정도로 우리 고유종에 관한 정밀 연구와 데이터 관리가 부실했음을 방증한다.
식물 분류 학계의 한 전문가는 “식물 명칭과 기록은 그 종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라며 “일본식 오기나 모호한 ‘섬’ 접두사 대신, 자생지의 상징성을 명확히 담은 ‘울릉앵(鬱陵櫻)’으로 명칭을 재정립해 국가 생물 주권을 명확히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섬벚나무는 화려함보다 내실이 강한 나무다. 척박한 해풍과 침수를 견디는 생명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매년 벚꽃 축제가 열리는 미국 워싱턴 DC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 호수 주변 벚나무 3800여 그루 중 섬벚나무는 약 5%의 비중을 차지해 식재 순위 3위에 올라 있다. 현지 조경 당국은 섬벚나무의 탁월한 습지 적응력과 내풍성을 인정해 ‘가장 생명력이 강한 수종’으로 꼽는다.
하지만 정작 고향인 울릉도에서 섬벚나무는 벼랑 끝에 서 있다. 1982년 천연기념물 제189호 지정에 이어 2008년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분류돼 국가적 적색경보가 켜진 상태다. 일반 벚나무 열매(버찌)보다 두 배가량 큰(20mm) 열매를 맺으면서 섬 생태계의 소중한 먹이원이 된 섬벚나무가 정작 인간의 무관심 속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과거 울릉도 주민들에게 약재와 생활 도구를 내어주던 동반자였던 섬벚나무. 이제는 단순한 관광 자원을 넘어 국가적 보존 가치가 높은 이 나무를 지키기 위해 국민적 관심이 절실해 보인다. 울릉도 현지 관계자는 “매년 봄, 일본산 왕벚나무의 그늘에 가려졌던 우리 ‘섬벚나무’의 진짜 매력을 확인하러 울릉도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억울한 이름표를 떼고 ‘울릉앵’이라는 제 이름을 찾아주는 일, 그것이 독도의 모도 울릉도가 품은 생명의 보석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황진영 기자 h0109518@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