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는 자연 풍광이 멋지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곳이 미야자키다. 구마모토와 오이타가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어울리는 여행코스가 많다면, 미야자키는 연인이 함께하기에 좋은 힐링 공간이 가득하다. 거리마다 야자수가 울창하고 늘 온화한 바람이 분다. 최근 후쿠오카를 강타한 지진으로 구마모토의 일부 관광지가 피해를 보기도 했지만 일본 내에서도 빼어난 여행지로 소문난 곳이다. 실속있게 떠나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구마모토와 미야자키로 주말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 기요마사가 축성한 구마모토 성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구마모토 거리는 선명한 녹음으로 멋지게 물들어 있었다.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핀 색색깔의 수국과 도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많은 강. 아소산맥에 원류를 둔 그 강들은 아리아케해를 향해 세차게 흘러가는 탁류로 상당히 불어나 있었는데 그 단호하고 청렴하기까지 한 물살에서 독특한 무언가가 느껴졌다”며 구마모토 여행의 느낌을 표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아니더라도 구마모토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규슈 한가운데, 도시를 내려다보는 검은 실루엣. 구마모토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버텨낸 시간’ 그 자체다. 일본 3대 명성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성은 지금도 완성형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복구 중인 살아 있는 역사다.
구마모토성은 17세기 초, 전국시대의 명장이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원흉인 가토 기요마사가 7년에 걸쳐 완성한 성이다. 적이 쉽게 오르지 못하도록 설계된 가파른 석벽(무사카에시), 복잡한 진입 구조, 그리고 견고한 목조 건물까지. 이 성은 ‘공격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였다.
그 견고함은 1877년 세이난 전쟁에서도 입증된다. 당시 반군을 이끈 사이고 다카모리가 남긴 말이 유명하다.
“나는 정부군이 아니라, 기요마사에게 졌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은 이 성을 처참하게 흔들어 놓았다. 천수각의 지붕이 무너지고, 돌담은 곳곳에서 붕괴됐다. 약 800여 곳이 손상되며 성 전체가 ‘해체 직전’의 상태로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구마모토성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었다. 이 도시의 상징이었고, 사람들의 기억이었다. 그래서 복구는 단순한 공사가 아니라 ‘부흥의 과정’으로 시작됐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천수각이다. 2021년, 성의 중심인 천수각이 복구되며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은 내부 전시와 전망대까지 정상 관람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체 복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주요 건물과 석축은 여전히 해체·보수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미완의 상태가 오히려 특별한 경험을 만든다는 것이다. 현재 성 내부에는 ‘특별 관람 통로’가 설치되어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해체된 목재에 번호가 붙어 있는 모습이나 수 천 장의 기와를 하나씩 검사하는 과정, 전통 방식으로 재현되는 흙벽을 직접 볼 수 있다.
천수각 최상층에 오르면 구마모토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현대 도시가 펼쳐지고, 다른 한쪽에는 아직 복구 중인 성곽이 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장면. 이곳에서는 시간이 직선이 아니라 ‘겹겹이 쌓인 층’처럼 느껴진다.
구마모토성과 함께 구마모토지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이젠지(水前寺)공원은 일본식 정원의 진수를 보여준다. 넓게 깔린 잔디 위로 정원석과 소나무가 절묘하게 배치돼 있다.
△ 신비한 풍경의 다카치호 협곡
구마모토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가면 미야자키에 닿는다. 자연환경이 빼어난 미야자키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곳이 다카치호 협곡이다. 태곳적 아소산의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 협곡에서 제일 높은 곳은 100m며 평균 80m의 절벽이 동서로 약 7㎞에 걸쳐 이어져 있다. 협곡 주변은 잘 정비돼 있다. 협곡을 따라 산책길이 조성돼 있어 강물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규슈 올레 코스 중에서도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다카치호 협곡은 약 10만년 전 아소화산의 분화로 흘러내린 용암이 식으며 만들어진 계곡이다. 시간이 흐르며 물이 단단한 바위를 깎아 내렸고 그결과 지금 우리가 마주한 독특한 주상절리 절벽이 완성됐다.
협곡 안에는 ‘일본의 폭포 100선’에 선정된 유명한 마나이노타키폭포가 있다. 폭포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일본 같지 않은 독톡한 경관 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다.
폭포를 자세히 보고 싶다면 보트를 타고 수면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다. 주상절리의 단애·절벽 마나이노타키폭포를 모두 볼 수 있다. 협곡 바위 틈 아래 물에는 햇빛조차 잘 닿지 않는다. 틈이 좁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협곡을 형성한 바위 위로 숲이 울창하기 때문이다. 협곡의 바위는 모두 화산암. 굳은 용암지대가 고카세강에 의해 침식돼 형성된 계곡이다. 가을 단풍철이 되면 협곡 주변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다카치호 협곡의 풍경은 신화를 낳았다. 창조주 이자나기의 눈에서 꺼낸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와 코에서 꺼낸 폭풍의 신 스사노오는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마테라스는 동굴에 숨는다. 그러자 세상은 암흑천지로 변했고 800만 신은 아마테라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춤을 추며 축제를 펼쳤다. 그 춤이 가구라다. 아마테라스가 숨었다던 아마노이와토 동굴은 신사 뒤편에 있다.
보트가 부담스럽다면 산책로를 따라 걸어도 다카치호 협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약 1km 남짓 이어지는 길은 완만하고 정비가 잘돼있어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길 곳곳에는 작은 전망대가 있어 협곡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어떤 곳에서는 폭포가 정면으로 보이고 어떤 곳에서는 물빛이 더 깊어 보인다. 특히 비가 온 뒤에는 물의 색이 더욱 짙어지고, 숲은 더 푸르게 살아난다. 여행자에게는 약간의 불편이지만, 풍경에게는 가장 좋은 조건이다.
}협곡을 내려온 뒤에는 인근 마을에서 열리는 ‘요카구라(夜神楽)’ 공연을 볼 수 있다. 이는 일본 전통 신사 의식에서 비롯된 춤으로, 신화를 몸짓으로 풀어낸다. 어둠 속에서 북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춤은 낮에 보았던 협곡의 풍경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자연과 신화, 그리고 인간의 삶이 한데 이어지는 순간이다.
최근 이곳은 단순한 ‘절경’에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2026년 기준으로 산책로와 전망 데크가 정비되며, 안전성과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
△ 세계 최고의 현수교 데루하
미야자키 중부에 있는 데루하 현수교는 높이 142m, 길이 250m의 걸어서 건너는 출렁다리로는 도보용 현수교 중 지면부터의 높이가 세계 최고라고 한다. 다리에 서서 아래를 내다보면 계곡물이 흐르고 산의 허리가 보인다. 다리 중간쯤 도달했을 무렵에 다리가 서서히 흔들린다. 다리를 다 건너면 매표소에서 ‘무사귀환했다’는 의미로 확인 도장을 찍어준다. 다리로서의 기능보다는 계곡 풍광을 감상하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이 다리는 이미연이 나온 영화 ‘흑수선’의 추격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동남쪽으로 이동하면 ‘크로스 바다’가 보인다. 오랜 침식에 의해 자연이 만들어낸 십자가 모양의 작품에 저절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게 된다. 크로스 바다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말의 등을 닮은 우마가세가 있다. 우마가세 아래로 태평양 바다가 짙푸르다.
△ 여행정보
인천~미야자키는 아시아나항공 직항편이 주 3회 운항하며 1시간30분 걸린다. 현수교 근처의 슈센노모리는 일종의 ‘술 테마파크’다. 소주 청주는 물론 맥주 와인까지 있다. 물이 맑아 양조업이 발달한 미야자키를 대표하는 곳이다. 시음도 하고 술도 살 수 있다. 유리공방 식당에 온천탕과 전통 여관까지 있다. 이 온천탕에는 ‘사케 부로’라는 청주를 섞은 온천탕도 있다. 미야자키규는 와규(和牛:일본 토종 소) 올림픽에서 10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일본 최고의 육질로 평가되는 미야자키현의 브랜드 소고기다. 부드러움이나 색, 맛 등이 뛰어나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