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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줘도 비닐 못 구한다”⋯중동발 ‘나프타 쇼크’에 타들어 가는 농심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6-03-30 12:39 게재일 2026-03-3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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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경주시 안강읍의 한 농자재 도매상에서 관계자가 얼마 남지 않은 농업용 비닐을 정리하고 있다. 업체 측은 “중동 사태 이전에 확보한 물량 외에 추가 주문은 사실상 끊긴 상태”라고 전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작목반원들끼리 매년 비닐을 공동 구매해왔는데 올해는 대량 주문 자체가 안 된답니다. 당장 4월부터 교체할 비닐이 없으니 가슴이 타들어 가죠”

30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만난 딸기 농민 임모 씨(62)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임 씨가 운영하는 딸기 하우스는 총 25동. 한 동(폭 12m, 길이 80m)을 덮을 비닐조차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그는 “비닐이 없으면 온도 조절이 안 돼 딸기 생육에 치명적인데 지금으로선 대책이 없다”며 허탈해했다.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두고 농촌 현장에 ‘자재 대란’이 덮쳤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갈등 등 중동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Naphtha) 수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프타는 농업용 비닐, 부직포, 플라스틱 육묘 상자 등의 핵심 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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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한 농약사 창고에 소량의 재고 비닐 몇 롤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단정민기자

인근에서 농약사를 운영하는 이모 씨(70)의 창고는 썰렁했다. 구석에는 작년에 들여온 재고 비닐 몇 롤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씨는 “매년 1000롤 정도를 주문해 농가에 공급했는데 올해는 아예 주문 단계부터 막혔다”며 “공장에서 원료가 없다고 주문을 안 받으니 소매상 입장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나마 나오는 물량도 롤당 가격이 벌써 오르고 있다”며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면 비닐을 구하려는 농민들이 몰려들 텐데 벌써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가게의 비닐 재고는 평년 대비 10% 수준에 불과하다.

농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농사에 쓰는 멀칭용(흙 표면을 덮는 작업) 비닐 가격은 지역에 따라 1년 전보다 최대 40%가량 급등했다. 멀칭 비닐은 고추·수박·참외 등 주요 작물 재배 시 잡초 억제와 수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자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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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안강읍의 한 농자재 도매상에 농업용 이중 부직포 재고 물량이 소량 쌓여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 상승은 비닐뿐 아니라 농업용 부직포 가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에 국제 유가 불안으로 인한 면세유 가격 상승과 비료비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모내기를 앞둔 벼 농가 남모 씨(66)는 “부직포를 구하려고 사방팔방 연락을 돌렸으나 ‘물량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전쟁 이후 원재료비가 다 올랐다는데 농사지어서 남는 것도 없는 마당에 자재비까지 이렇게 뛰면 도대체 뭘 먹고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포항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전국적인 현상이라 지자체 독자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며 “추경을 통한 지원 단가 현실화와 국비 지원 사업 연계를 검토 중이며 현장의 애로사항을 중앙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농업 생산 기반 붕괴를 경고한다. 

허등용 경북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식량 안보 차원에서 나프타 등 기초 원료를 농업 분야에 최우선 배정하는 정책적 결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수급 정보를 실시간 공개해 사재기 불안을 잠재우고 유류비 지원 모델처럼 농자재 차액을 사후 보전해 경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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