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경북 북부 산림 10만 4000㏊를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은 꺼졌지만,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시커먼 잿더미 속에 갇혀 있다.
국가적 재난 수습을 위해 제정된 ‘산불특별법’은 피해 주민의 일상 복구는 외면한 채 산림 규제를 완화해 민간 자본의 개발 길을 터주는 ‘특혜법’으로 전락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의성·안동·영덕 등 피해 현장을 점검한 결과, 주민 10명 중 6명(62.4%)은 여전히 24㎡(약 7평) 남짓한 임시 컨테이너에서 두 번째 봄을 맞고 있었다. 주택 재건축 비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보상 체계 탓에 전소 피해자의 42.1%는 집 짓기를 포기했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은 수천 평 규모의 공장시설이 전소됐음에도 정부 지원금이 재건 비용의 1~2% 수준에 불과한 법정 지원금 상한액에 묶여 재건은 커녕 도산 위기로 내몰린 상태다.
과수 농가의 상황은 더 처참하다. 묘목을 심어 수확까지 최소 5~7년의 소득 공백이 예상되지만, 특별법 시행령이 보장하는 긴급 생계 지원은 고작 6개월뿐이다.
극심한 주거 불안과 경제적 몰락 속에 피해 주민 87%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의심 수준을 보이는 등 정신적 내상은 깊어지고 있다.
주민들이 생존의 기로에서 신음하는 사이 산불특별법은 산림 규제를 허무는 ‘고속도로’가 됐다.
특별법 61개 조항을 전수 분석한 결과, 주민 지원 조항은 대부분 “지원할 수 있다”는 식의 선언적 재량 규정에 그친 반면 민간 투자자를 위한 조항은 “수용할 수 있다”, “협의가 완료된 것으로 본다” 등 행정 절차를 강제하는 ‘간주·의제’ 규정으로 채워졌다.
특히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45일 내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으로 통과된 것으로 보는 ‘간주 처리’ 조항과 민간 사업자에게 토지 강제 수용권을 부여한 조항은 전례 없는 ‘특례’라는 지적이다.
법 통과 직후 경북도가 청송과 영덕에 골프장 조성을 포함한 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하자 전국의 85개 시민단체는 “산불을 빌미로 한 난개발 면죄부”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간벌 위주의 정책이 오히려 화를 키웠다고 지적하며 이제라도 ‘진화’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개발’ 중심에서 ‘존엄한 회복’으로 국가 재난 대응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잿더미 위에서 주민들은 묻는다. 국가가 말하는 ‘특별한 지원’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