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통상정책인 ‘상호관세’를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글로벌 통상 질서와 기업 전략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대체 조치로 전 세계 수입품에 10% 긴급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혀 통상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20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상호관세 및 이른바 ‘펜타닐 관세’에 대해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헌법상 관세 부과 권한은 연방의회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판결문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작성했으며, 9명의 대법관 가운데 6명이 다수 의견에 동참했다. 다만 이미 징수된 관세의 환급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이번 소송은 미국 중소기업과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이 이끄는 주 정부들이 2025년 봄 제기했다. 1·2심 모두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고, 행정부의 상고 끝에 대법원 판단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IEEPA가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하지 않았으며, 재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권한을 행정부에 위임하려면 의회가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관세처럼 의회의 핵심 권한에 속하는 사안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더욱 엄격히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위헌 판결 대상 관세로 이미 걷힌 금액은 2025년 12월 기준 1200억달러(약 173조9400억원)를 넘는다. 이 중 상호관세가 817억달러(약118조4242억원)로 가장 크고, 대중(對中) 펜타닐 관세가 378억달러(약54조7911억원)를 차지한다.
△트럼프 “깊은 실망”···150일 한시 10% 관세 발동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깊은 실망”을 표명하며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체 조치로 1974년 통상법 122조에 근거해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상법 122조는 국제수지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조치로, 최대 15% 관세를 150일간 한시적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의회 승인 시 연장이 가능하지만, 성격상 임시 조치에 가깝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해당 조치가 즉시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행정부는 이 기간 동안 추가 관세 부과를 위한 법적 준비에 착수할 방침이다. 불공정 무역에 대응하는 통상법 301조, 국가안보를 근거로 하는 무역확장법 232조 등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232조는 최대 270일의 조사 기간이 필요해 본격 시행은 올해 11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일 협상 영향 촉각···통상 불확실성 확대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를 지렛대로 주요 교역국과 협상을 진행해 왔다. 일본 및 한국과는 이미 합의가 이뤄졌으며, 일본의 대미 투자 확대 계획(5500억달러 규모)도 발표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협상 유지 여부에 대해 “대부분은 그대로 갈 것”이라면서도 일부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번 판결로 미국 행정부의 통상정책 추진 방식에 제동이 걸리면서, 글로벌 공급망과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세 정책의 법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철강·자동차·배터리 등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법원 판결은 대통령의 통상 권한 남용에 제동을 건 역사적 결정”이라면서도 “행정부가 다른 법적 수단을 통해 관세 정책을 지속하려는 만큼 통상 마찰은 오히려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