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베트남 출장 중 현지시간 25일 오후 2시 48분 별세했다. 향년 74세다.
민주평통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2일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찌민으로 출장을 떠났으나, 다음 날인 23일 오전 급격한 호흡 곤란을 겪으며 탐안 종합병원으로 응급 이송됐다. 이송 중 한때 심정지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현지에서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별세 직전까지 조정식 정무특보를 비롯한 측근들이 현지에서 국내 이송을 지원했으나 끝내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부터 유신 체제에 맞선 1세대 운동권의 선두에 섰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르면서도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워나가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88년 13대 총선(서울 관악을)을 시작으로 국회에 입성한 고인은 14·15·16·17·19·20대 의원을 지낸 7선 거목이다.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 시절 고교 평준화와 학력고사 폐지 등 파격적인 교육 개혁을 단행해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를 낳았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제36대 국무총리로서 행정수도 이전을 주도하며 ‘실세 총리’로 불렸다. 특히 노 전 대통령과는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각별한 신뢰 관계였으며,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유능하다”는 극찬받기도 했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고인은 야권의 정신적 지주이자 전략가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켰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중앙 정치의 문법을 전수한 ‘정치적 멘토’로 통했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친 이 대통령의 당내 기반을 다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으며,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승리를 견인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서 이재명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을 뒷받침해왔다.
/고세리기자 ksr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