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암호 체계의 허점을 메울 ‘물리적 보안’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빛의 파장과 소자 간의 거리 자체를 열쇠로 삼아 해킹이나 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포항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항공우주공학과·화학공학과 노준석 교수 연구팀은 빛의 파장과 메타표면 간의 거리만으로 작동하는 ‘보안 홀로그램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연구의 핵심은 ‘메타표면(metasurface)’이다. 이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판 위에 빛을 정교하게 제어하는 미세 구조를 배열한 광학 소자다. 연구팀은 여기에 인공지능(AI) 신경망 개념을 접목한 ‘모듈러 회절 심층 신경망’을 설계했다.
기존 홀로그램이 하나의 소자에 단일 정보만 담았던 것과 달리 이 기술은 빛이 전파되고 간섭하는 물리적 현상 그 자체가 전산 처리를 수행하도록 했다. 별도의 전원이나 전자 칩이 없어도 빛을 비추는 것만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일종의 ‘광학 컴퓨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보안 플랫폼은 빛의 파장(색)과 메타표면 층 사이의 거리가 약속된 값과 정확히 일치할 때만 숨겨진 정보를 드러낸다. 메타표면 한 층에 특정 파장의 빛을 비추면 사용자 식별자가 나타나지만 파장을 바꾸면 전혀 다른 이미지가 출력된다.
특히 두 개 이상의 층을 조합할 때 보안성은 극대화된다. 두 층을 정밀한 거리로 배치하고 정해진 파장의 빛을 투사해야만 암호화된 홀로그램이 공중에 구현된다. 파장이 다르거나 층간 거리가 미세하게만 어긋나도 정보는 나타나지 않는다. 빛의 물리적 조건 자체가 강력한 ‘비밀번호’가 되는 구조다.
노준석 교수는 “이번 연구는 빛의 물리적 특성 자체를 보안 키로 활용해 기존 디지털 보안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라며 “디지털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물리적 보안이 가장 강력한 해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