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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 대신 고요로, 설명 대신 여백으로…겨울 사찰여행

최병일 기자
등록일 2026-01-19 15:41 게재일 2026-01-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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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 오르면 풍경이 먼저 말을 걸고, 산사에 이르면 침묵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산사여행은 발걸음보다 마음이 먼저 도착한다. 굽이진 산길 끝, 나무들 사이로 기와지붕이 낮게 모습을 드러낼 때
여행자는 비로소 숨을 고른다.
속도를 내려놓고, 말을 줄이고, 생각을 접는 순간이다. 산사는 늘 그렇게 사람을 맞는다. 환대 대신 고요로, 설명 대신 여백으로. 한겨울 산사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면 마음의 평화를 온전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겨울에 떠나기 좋은 산사 4곳을 소개한다. 

△ 전나무 숲길이 유명한 월정사 

오대산 설산의 풍경_최병일 기자 
드론에서 찍은 월정사 전경 _최병일 기자 

평창 여행의 백미는 역시 오대산이다. 해발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개 봉우리 아래 월정사, 상원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찰을 품고 있는 산이다. 오대산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전국을 순례하다가 당나라 오대산과 산세가 비슷하다며 붙여준 이름이다. 비로봉에서 평창 쪽으로 내려가는 오대산 지구와 계방산 지구는 부드러운 흙산으로, 산수가 아름답고 문화 유적이 많다.

자장율사가 창건한 아름다운 사찰 월정사 _최병일 기자 

오대산 자락에 있는 월정사로 들어가려면 전나무 숲길을 넘어가야 한다. 전나무 숲길은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부터 대략 1㎞ 정도의 소슬한 산책길이다. 숲길은 S자로 굽어 있다. 길 초입에는 월정사 단기출가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모아놓은 삭발탑이 서 있다. 세속의 삿된 마음을 내려놓고 진리의 세계로 향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금은 숲길이 됐지만 원래 월정사 전나무는 아홉 그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수령 500년을 넘긴 전나무들이 씨를 퍼뜨려 숲을 이룬 것이다. 전나무 숲길은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김신 역)가 김고은(고은탁 역)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낭만적인 길이기도 하다.

월정사에 있는 다양한 모양의 부도_최병일 기자 

월정사는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사찰로 향하는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전나무 숲길을 넘어 당도한 월정사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위압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간결하면서도 담담한 절집이다. 사찰 안에 품은 보물들이 많아서일까. 화강암으로 만든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은 고려시대 최고의 석탑으로 손꼽힌다. 전신이 날씬하게 위로 솟은 모양에, 윗부분의 금동 장식이 기품을 더한다. 탑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공양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은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의 매력적인 미소가 인상적이다.

△ 다양한 이야기 품은 상원사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 상원사 _최병일 기자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8.8㎞, 빠르게 걸어도 3시간 넘게 걸린다. 이 길을 선재길이라고 부른다. 원래 선재길은 1960년대 말 월정사와 상원사 사이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신도가 오가던 비밀스러운 숲길이었다. 화엄경에서 불교의 진리를 찾아 천하를 돌아다니다 보현보살을 만나 마침내 득도한 ‘선재동자’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월정사 부도밭에서 시작된 선재길은 평탄한 데크와 뽀드득한 눈을 밟으며 산책하듯 갈 수 있다. 중간중간 쉼터가 있고 물이 있던 자리마저 눈이 가득해 운치가 있다.

상원사 _최병일 기자 

선재길 끝에 있는 상원사는 월정사보다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신라 신문왕 시절 보천·효명 두 왕자는 불법에 뜻을 품고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형 보천은 진여원이라는 이름의 암자를 짓고 수도했고, 동생 효명은 북대 자리에 암자를 짓고 수도 정진했다. 두 왕자가 모두 출가하자 신문왕은 사람을 보내 형제에게 왕위를 이어줄 것을 간청했다. 

보천은 끝내 거절했고 동생 효명이 왕위를 계승했다. 보천이 기거하던 진여원이 지금의 상원사다. 선재길은 상원사에서 끝나지만, 상원사의 산내 암자인 적멸보궁(보물 제1995호)까지 만나야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은 작은 불당과 사리탑이 전부지만 부처님의 흔적을 느끼고 싶은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선자령으로 가는 길 안개가 자욱하다_최병일 기자 

상원사 여행을 마치고, 다음날 선자령으로 향했다.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성산면 사이에 있는 선자령은 겨울 풍광이 빼어난 트레킹 명소다. 해마다 걸었던 길을 안개가 가로막았다. 떼는 걸음마다 안개가 치덕거리며 발목을 잡았고 앞서가던 등산객은 안개 속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한 길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헤매다 돌아 나오니 하늘은 어느새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 겨울에 가장 깊어지는 선운사 

붉은 동백이 이색적인 선운사의 풍경_한국관광공사 제공 

겨울의 선운사는 화려함을 내려놓은 얼굴이다. 봄이면 동백으로 붉게 타오르고, 여름엔 숲의 생기로 넘치지만, 겨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산사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진 시간, 선운사는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고요 속에 오래 머물 뿐이다.

전북 고창 도솔산 자락에 자리한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검단선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구름 속에서 참선을 닦는다’는 뜻의 이름처럼, 절집은 늘 낮은 안개와 산기운에 싸여 있다. 매표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짧지만 여운은 길다. 물소리는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돌계단 위로는 낙엽과 눈이 섞여 사찰로 향하는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

한폭의 수묵화가 따로없는 선운사의 겨울 풍경_한국관광공사 제공 

대웅보전 앞마당에 서면 선운사의 겨울은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색을 덜어낸 풍경 속에서 단청은 오히려 절제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절의 진짜 주인공은 화려한 불전이 아니라, 오래된 침묵이다. 산사의 겨울은 언제나 그렇다. 보여주기보다 견디고, 말하기보다 지켜본다.

선운사는 동백으로 기억되지만, 겨울의 선운사는 ‘비워진 시간’으로 남는다. 방문객이 줄어든 자리에 고요가 들어서고, 그 고요는 여행자의 마음을 조용히 흔든다. 법당 앞에 서면 소원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다. 그래서 겨울 선운사는 위로보다 성찰에 가깝다.

연등위로 눈이 달렸다. 겨울 산사는 고적하고 깊이가 있다_한국관광공사 제공 

눈이 내린 날, 도솔천을 따라 걷다 보면 발자국 소리마저 사라진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절이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켜온 이유를. 선운사의 겨울은 풍경이 아니라 태도다. 천천히 걷고, 조용히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가치에 대해 말없이 가르쳐준다.

△미륵의 시간, 눈 속에서 천천히 깨어나는 금산사 

금산사는 다른 어떤 계절보다 겨울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_한국관광공사 제공 

금산사의 겨울은 크고 깊다. 전북 김제 모악산 자락에 안긴 이 사찰은 단번에 시선을 압도한다. 그러나 그 웅장함조차 겨울 앞에서는 한 걸음 물러선다. 눈이 내린 날의 금산사는 크기보다 시간으로 다가온다. 천천히,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 창건된 사찰로,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중심지다. 국보 제62호 미륵전은 국내 유일의 3층 목조건물로, 외형만으로도 범상치 않다. 하지만 겨울에 마주한 미륵전은 장엄하기보다 묵직하다. 하늘로 솟기보다 땅을 단단히 딛고 서 있는 모습이다.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겨울 바람은 매섭지만, 절집 안으로 들어서면 이상하리만큼 차분해진다. 넓은 경내는 사람을 작게 만들고, 그 작아짐은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금산사는 크지만 산만하지 않고, 웅장하지만 요란하지 않다. 오랜 세월 기도와 수행이 겹겹이 쌓인 결과다.

눈으로 포위된 산사의 고적한 모습_한국관광공사 제공 

눈 덮인 미륵전 앞에서 잠시 멈춰 서면, 금산사가 왜 ‘기다림의 사찰’로 불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미륵은 미래의 부처다. 아직 오지 않았기에, 이곳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겨울 금산사는 바로 그 기다림을 닮았다. 조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다.

사찰 뒤편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겨울에 더욱 좋다. 발길이 뜸해진 숲길에서 바라보는 금산사는, 거대한 불교 유적이기 이전에 한 채의 산사로 다가온다. 여행자는 그 앞에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신앙 때문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예의로.

금산사의 겨울은 화려한 깨달음 대신 느린 수긍을 건넨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기다림이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이 산사는 말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겨울 금산사는 보고 오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잠시 맡기고 오는 곳이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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