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수술대 위에서 죽어가던 그 순간, 모두는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성형수술 중 사망한 故권대희 씨 모친의 발언이다. 권 씨 모친은 아들의 억울한 죽음 후 7년간 처절하게 투쟁했고 이 노력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시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의료계의 불법 대리·유령수술은 여전히 근절되지 못한 채 환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불법 의료행위 사건들에 대한 재판이 지지부진한 상황도 환자들을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는 주장이 시민단체에서 불거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MBC에브리원 ‘히든아이’가 권 씨 사건을 방송으로 다루며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번 충격을 안겼다. 수술실을 책임지는 의사는 자리를 비우기 일쑤고,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한 환자가 사망한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해당 방송은 대리·유령수술의 실태와 위험성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렸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환자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비의료인이 수술에 참여하거나 의료진이 아닌 이들이 집도의로 둔갑하는 불법적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면서 “이른바 ‘공장식 수술’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권씨가 사망한 후 9년째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의료행위에 대한 개선과 변화는 미미한 상황이다.
우선 권씨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은 지난해 9월 25일 시행된 지 1년이 됐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기준으로 전국 의료기관 수술실에 CCTV가 100% 설치됐음에도 불구하고 녹화 여부 고지 의무가 없어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등으로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의 개설자는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야 하고, 환자 또는 보호자가 요청하면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데 환자나 보호자가 미리 신청하지 않아 촬영되지 않은 의료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불법 의료행위 근절에 직접적 도움이 될만한 관련 사건들도 지지부진하거나 법정다툼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불법의료행위 근절’을 위한 행보가 더뎌지고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 측 전언이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불법 의료행위와 관련한 사건들의 경우 재판 결과가 의료계에 만연한 대리·유령수술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주요 사건 관련 재판들은 제대로 진행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다뤄졌던 Y병원 불법의료행위 사건이다. Y병원 사건은 병원장이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 등 비의료인에게 대리수술을 맡기고, 실제 집도의가 아닌 의사의 이름을 진료기록에 기재한 혐의로 지난해 5월 병원 소속 의사 및 직원들과 함께 기소된 건이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K병원장이 1년에 3천 건이 넘는 인공관절 수술을 집도했다고 건강보험에 청구한 사실이 드러나며 의료계와 사회 전반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대한 재판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7차 공판이 열렸다”면서 “Y병원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지 3년이 지난 상황에서 1심 재판도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피고인 측의 공판기일 변경 요청과 변호인 변경, 기일 연기 신청 등으로 재판이 계속 지연돼 왔다면서 “이는 환자와 국민에게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7차 공판에서 Y병원 순환간호사로 근무했던 증인이 출석해 ‘8~9명의 영업사원이 매일 출근해 수술방에 상시 출입했다’, ‘인공관절 수술 과정에서 절삭, 벌림, 임플란트 삽입, 망치질 등 의료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핵심 시술을 영업사원이 직접 수행했다’는 등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고 전하며 “앞서 공판 과정에서도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직접 대리수술에 참여했다는 증언을 하는 등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에서도 재판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면서 “Y병원 재판과 같은 사안은 특정 병원과 의사의 문제를 넘어, 의료계 전반에 만연한 불법 수술 관행을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한국 의료 시스템의 허술한 관리와 책임 구조의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큰 만큼 더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의료행위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 역시 “형사소송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증인이 불출석하거나 증언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 부과나 감치 처분까지 가능하다”며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건강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료계 불법행위 근절을 외치는 시민단체들은 “국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적 의료 행위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실체적 진실 규명과 엄정한 판결, 그리고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