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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은 그저 아름다운 여행지가 아닌 스스로의 마음을 비추어 보게 하는 곳”

최병일 기자
등록일 2025-09-29 20:01 게재일 2025-09-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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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랜드캐니언’ 주왕산의 풍광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지는 환상적인 풍경의 주산지. 

청송의 풍경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단아하고, 오래 바라볼수록 깊다. 산은 묵직한 기품으로 사람을 품고, 물은 잔잔한 여운으로 마음을 적신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이곳에 서면,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본래 속도가 비로소 되살아난다.  청송은 그저 아름다운 여행지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비추어보게 하는 거울 같은 곳이다. 국내 12번째로 지정(1976년)된 주왕산국립공원, 왕버들과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주산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있는 신성계곡과 백석탄, 무더울수록 얼음이 어는 얼음계곡 등 자연으로 인해 순수해지는 곳. 청송으로 가을여행을 떠나보자.

 

병풍바위·시루봉 등 기암괴석 곳곳에 널려 있고 
용추폭포·절구폭포 등의 장엄한 계곡 어우러져

 

주왕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고운 단풍  물든 가을
트레킹 코스마다 전국서 몰린 등산객 인산인해

 

300년 왕버들이 그림자 드리운 채 서 있는 ‘주산지’
새벽녘이면 현실과 꿈의 경계 희미한 신비의 무대

 

선물 같은 맑은 공기·여유 함께 즐기는 ‘청송정원’
붉은 하늘·은빛 억새 어우러진 푸른 산 ‘가을 백미’

 

하늘을 찌르듯 솟구친 기암괴석이 골짜기를 이루는 주왕산의 웅장한 풍경. 

△‘신의 갤러리’라는 애칭 붙은 주왕산

안개가 물 위를 살며시 스치고, 오래된 나무가 고요히 호흡하는 순간. 청송(靑松)의 아침은 그 이름처럼 푸르고 청아하다.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돌과 나무, 물과 바람이 어우러져 빚어낸 풍경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주왕산은 바위의 산이다. 하늘을 찌르듯 솟구친 기암괴석이 골짜기를 감싸고, 그 사이로 시리도록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왕의 흔적과 바위의 이름은 허공에 메아리처럼 번져나가고, 산을 오르는 발걸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또 다른 장면으로 이어진다. 주방천을 따라 이어지는 협곡은 때로는 위엄 있고, 때로는 정겹다.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바위를 물들이고, 겨울이면 설화가 계곡을 장식한다. 계절마다 표정이 달라지는 주왕산은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한 폭의 동양화와도 같다.

매력적인 산세만큼 가을이면 주왕산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금강송 숲을 체험하는 사람들경북에는 다양한 산이 있다. 그 가운데 주왕산을 첫손에 꼽는 것은 감성적이면서도 순정한 매력이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주왕산은 산세가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고 하여 석병산이라고도 불렸다.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될 만큼 병풍바위, 시루봉 등 기암괴석이 널려 있고 용추폭포 절구폭포 등의 계곡이 어우러져 ‘신의 갤러리’라는 애칭을 얻었다. 장엄한 협곡이 어우러진 풍경 때문에 비록 규모는 비교가 안 돼도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왕산은 산세만큼 수많은 전설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주왕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주왕과 관련이 있다.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던 왕손 주도가 후주천왕을 자칭하며 반기를 들었다가 당나라 군사에게 쫓겨 이 산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주도는 이후 주왕굴에서 최후를 마쳤는데 이 때문에 주왕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신라 태종무열왕 6대손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자 이 산에 숨었다가 사후에 주원왕으로 불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양한 등산코스가 갖춰져 있는 주왕산

주왕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역시 단풍이 물든 가을이다. 오색단풍이 옷을 갈아입은 모습은 그야말로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트레킹코스마다 전국에서 온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주왕산은 등산 코스로도 매력적이다. 초보자들은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올라갈수록 다양한 풍광이 펼쳐져 눈을 사로잡는다. 날카로운 수직 바위 절벽 사이로 급수대, 학고대, 시루봉 등 다양한 모양의 기암이 줄을 선다. 용추협곡을 지나면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가 잇달아 모습을 드러낸다. 용연폭포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리지만 용추폭포까지 가는 데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물안개가 올라가면 주산지의 풍경은 환상이 된다. 

△ 환상적인 풍경이 일품인 청송의 자랑 주산지

산에서 내려오면 물의 풍경이 기다린다. 주산지다. 300년 넘게 뿌리를 내린 왕버들이 고요한 수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묵묵히 서 있다.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이곳은 현실과 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신비의 무대가 된다. 물 위에 서 있는 나무들은 말이 없지만,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긴 세월을 거쳐도 변치 않는 자연의 인내와 생명의 숨결이 바로 그 속에 담겨 있다.

주산지는 조선 경종 원년(1721)에 완공한 농업용 저수지다. 지금까지 어떤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2013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5호로 지정됐다. 그냥 보면 평범한 저수지 같지만 왕버들과 어우러지면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여름이면 물속에 반쯤 잠기고, 가을엔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사진작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촬영 후 더 유명해졌다.

주산지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신성계곡이다. 청송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신성계곡에는 안덕면 신성리에서 고와리까지 맑은 천을 따라 ‘신성계곡 녹색길’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전체 길이 12㎞인 신성계곡 녹색길은 세 가지 코스로 나뉘는데, 이 중 백석탄길로 알려진 3코스는 1, 2코스에 비해 인적이 드물다. ‘하얀 돌이 반짝거리는 개울’이라는 뜻의 백석탄은 눈부시게 하얀 돌들이 모여 장관을 이룬다. 백석탄 하부에 가면 이암편, 사층리, 생흔 화석 등 수많은 퇴적 구조를 볼 수 있다.

 

신성계곡 녹색길 3코스는 안덕면 지소리 반딧불농장에서 고와리 목은재휴게소까지 약 4.7㎞ 거리다. 걷는 내내 1급수 어종인 꺽지와 다슬기가 서식하는 길안천의 맑은 물길을 따라간다. 길안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 청송의 특산물인 사과가 익어가는 과수원길을 지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지질 명소에 이르기까지 청송의 숨은 속살을 만날 수 있다. 안덕터미널에서 출발점과 종점 인근을 지나가는 버스는 하루 3대밖에 없어 시간을 잘 맞추는 게 좋다.

청송에서 꼭 만나야 할 곳은 객주문학관이다. 소설가 김주영의 역작 《객주》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드라마로도 여러 번 제작된 객주는 조선 후기 팔도를 누빈 보부상의 삶과 활약상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객주문학관에서는 김주영의 육필원고와 초판본에서 최신본까지의 다양한 판본을 살펴볼 수 있다.

 

 

얼음천국으로 변한 청송 얼음골. 

청송군 주왕산면에는 유명한 얼음골이 있다. 한여름 외부온도가 32도가 넘으면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계곡 징검다리 건너편 약수터 물맛이 일품이다. 골이 깊고 수목이 울창해 조용한 힐링을 원하는 도시민들의 피서지로 안성맞춤이다. 

인공의 흔적을 최소화한 잔잔한 풍경의 산소카페 

△ 자연의 결을 존중해서 만든 청송정원 

청송군 파천면에 있는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사람의 발길보다는 바람이 먼저 찾아와 쉬어가는 곳, 이름 속에는 이곳을 찾는 이에게 선물하려는 맑은 공기와 여유가 담겨 있다.

청송정원은 인공의 흔적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결을 존중해 만든 공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의 물결은 마치 호흡하는 생명체처럼 잔잔히 일렁인다. 꽃으로 만발한 봄과 여름의 풍경도 좋지만 청송정원의 절정은 가을이다.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억새가 은빛 물결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 코스모스가 붉고 분홍빛으로 춤을 춘다. 해 질 무렵, 노을이 들판을 붉게 물들이면 억새는 불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고, 코스모스는 마지막 햇살을 붙잡으려 몸을 기울인다. 가을에 가장 많은 사진가들이 몰리는 장소는 억새 전망대다. 나무 데크 위에 서면 억새밭 너머로 주왕산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붉은 하늘과 은빛 억새, 그리고 푸른 산이 어우러진 그 풍경은 말 그대로 청송 가을의 백미다.

화려하지 않아도 여린 꽃잎마다 고유의 빛을 품은 청송정원. 

‘산소카페’라는 이름은 과장이 아니다. 이곳의 공기는 도시에서 잊고 지낸 청량함을 품고 있다. 깊이 들이마실수록 마음까지 맑아지고, 숨이 가벼워진다. 몸이 먼저 편안해지고 나면, 마음은 저절로 유연해진다. 여행이란 결국 낯선 풍경을 만나는 일인 동시에,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되찾는 길이 아닐까. 청송정원은 그 길 위에서 가장 순수한 쉼을 허락한다.

정원의 꽃들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한 송이, 한 송이가 모여 만든 풍경은 겸손하면서도 우아하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고 여린 꽃잎마다 고유의 빛을 품고 있고, 멀리서 바라보면 자연의 거대한 수채화가 펼쳐진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질서와 균형이 그 속에 숨어 있다.

산책로 끝에 서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마음은 조용히 내려앉는다.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잠시 멈추어 서서, 자연의 속도에 자신을 맡기라고 속삭일 뿐이다. 그 순간, 삶의 소란스러운 결이 차분히 가라앉고, 잊고 있던 단순한 기쁨이 되살아난다.

청송을 찾는 발걸음이 주왕산과 주산지에서 시작되었다면, 청송정원은 그 여정을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쉼표와 같은 곳이다. 산과 물의 웅장한 풍경을 감상한 뒤, 들꽃과 풀향기 속에서 가만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여행은 비로소 완성된다.

/글_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사진_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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