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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부케

등록일 2025-09-24 19:00 게재일 2025-09-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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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경 수필가

여자는 족히 칠십은 되어 보였다. 옷은 스키니에 반짝이 스팡클이 달린 치마를 입었고 구두는 현란한 빨강색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며 갈아 신은 실내화 사이로 보이는 발톱에도 빨강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 “정자”라고 하면 노인이 알 거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이 그녀를 만나자 “오라버니, 오라버니 저예요. 정자” 라고 방문객이 큰소리로 말하자 어르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정자네. 우예 알고 왔노” 거의 이삼 십 분이 지나도록 호호 하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들고 온 사탕부케를 든 노인이 같이 나가서 식사를 하고 오겠다며 외출을 신청했다. 날이 날인만큼 잘 다녀오시라는 말과 보호자가 어르신을 다시 잘 모시고 오셔야한다는 규칙을 설명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차에 올랐다. 서너 시간 후에 돌아온 노인은 신이 나 있었다. 내가 누구냐고 묻자 “옛날 내가 젤 좋아하던 동생인데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좋네. 같이 맛난 밥도 묵고, 묵혀두었던 이야기도 좀 풀어놓으니 이제 좀 살 것 같다.”라는 말을 던지고는 휘파람을 불며 자신의 방으로 가볍게 걸어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조차 그 동생과 한참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 날 온나, 같이 나가보자 하하하”

노인은 젊은 날 부동산을 통해 큰 부를 이루었다고 했다. 건물과 땅들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고 며느리가 불편해 할까봐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 요양원을 찾아온 사람이었다. 그래도 남은 건물 하나에서 집세가 꼬박 꼬박 나오는 모양이었다. 칠년 전만 해도 그다지 상노인은 아니었기에 무료하고 지겨운 시간을 억지로 보내며 적응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TV를 켜두었다. 스케줄 따라 색종이로 무엇을 만들고 때론 떡을, 피자를 만들어도 그는 함께 하지 않았다. “머스마가 무슨 그런 일을 하냐” 고 도리어 짜증을 냈다. 다행히 하루 두 번 담배를 피우는 것이 그에게 큰 낙이었다. 밖으로 나가는 탈출구였으나 젊은 날 핀 담배로 인해 폐의 기능이 이삼십 프로밖에 안 남았다는 닥터의 진단에 삶에 낙이 없다고 낙담했다.

이틀 후 다시 정자씨가 찾아왔다. 옷은 첫날보다 더 대담해져 있었다. 이후 그녀는 자주 요양원을 찾았고 일상이 지겨웠던 노인에게는 봄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겹고 지겨운 나날에 벚꽃엔딩 노래 같은.

주보호자께 외출 소식을 전하자 외출을 자제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자 옛날부터 아버지랑 한때 어울렸는데 걱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거의 며칠이 멀다하고 둘은 땅을 본다며 외출했다. 자식들이 부탁한 사정을 이야기하자 버럭 화를 내며 “지그가 뭘 안다꼬. 내가 우째 지내는데 쓸데 없이. 내가 지그 살만큼 해줬으면 됐지” 그의 목소리는 노기로 가득했다.

오랜 시간 충족되지 않던 자유가 상황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인지 아프다거나 숨이 차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늘 ‘부동산을 보는데 내가 잘 보니까 데리고 가는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이 외출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어느 날부터 그들은 자주 만나지 않았다. 오라버니를 수시로 외치던 여인이 약속을 하고는 자꾸 어기는 모양이었다. 그녀를 못 만나며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헛헛한 마음을 이해하기도 했지만 전화기를 붙들고 “여보세요, 여보세요”라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자 화를 내며 전화기를 침대에 던지기도 했다. 어느 날 어르신을 뵈며 “건물의 세는 잘 나오고 있지요?”라고 묻자 “그거 정자한테 이전했다” 그 말에 놀라서 “파셨어요?”라고 묻자 “그냥 정자 앞으로 서류를 이전만 하고 당장 돈이 없다고 해서 돈 받을 곳이 있는데 그때 준다고 하더라” 는 믿기지 않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돈을 받고 팔아야지, 이전부터 하면 어떡해요“ 라고 얘기하자 어르신은 “괜찮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믿을 만하다”라고 했다. 하지만 뒤돌아서며 보니 자신의 머리를 치면서 “내가 미쳤지, 미쳤어” 라고 연신 같은 소리를 혼잣말로 하고 있었다.

걸어둔 사탕부케를 바라보는 노인을 슬쩍 지나치며 보았다.

/배문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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