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가면 더 좋은 국내 여행지 4선
어느덧 처서. 뜨겁고 독한 더위는 조금씩 뒤걸음질 치고 있다. 남도의 여름은 유혹이 많다. 바다는 반짝이고, 산은 푸르며, 밥상은 넘친다. 여행자는 고민한다. 이번 여름, 어디로 갈까. 순천에서 시작해 부여, 공주, 부안을 잇는 길은 맛과 역사, 풍경과 발걸음을 모두 채워주는 여정이다.
맛 - 전라도의 참맛을 찾아 떠나는 순천여행
전라남도 순천은 예로부터 물자가 풍부한 지역이었다. 맑은 계곡이 흐르고 바다를 면하고 있어 살기 좋은 자연적 지형은 두루 갖춘 곳이다. 조선시대 때 순천은 산과 들에서 나는 각종 식재료를 비롯한 약재, 맛있는 제철 과일과 바다에서 거두는 해산물까지 약 28종의 다양한 농수산물을 나라에 바쳤다.
순천을 대표하는 요리를 선뜻 꼽을 수 없다. 것은 출중한 요리의 가짓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만 가지 재료를 조합하여 만 가지 반찬을 차려 내니 종류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을 터. 올여름, 식도락 여행을 위해 순천을 찾았다면 수많은 선택의 폭에서 이것만 기억하자. 왕의 밥상을 받을 것인가? 스님의 밥상을 받을 것인가?
순천의 남도정식은 순천만 칠게요리와 미나리 떡갈비를 맛 볼 수 있고 식사 반찬이 무려 11가지나 된다. 동그란 소쿠리에, 반찬 접시를 빈틈없이 채운 밥상을 보면 군침이 절로 흐른다. 가성비도 좋다. 1인 1만5000원부터 시작하며 3만원을 넘지 않는다.
순천은 전국 꼬막 종패 생산량 약 70%를 차지 하는 꼬막의 고향이다. 이 꼬막 동네에는 색다른 꼬막 요리가 있으니, 일명 ‘꼬막장’이다. 간장을 베이스로 하지만 심심하면서도 감칠맛이 돈다.
임금의 밥상에 올린 산해진미도 즐길 수 있다. 고급 한정식을 선보이는 이곳에선 미식가들만 즐긴다는 홍어삼합이 다만 한두입 맛보는 반찬이다. 즉 모든 반찬이 귀한 요리와 같으니 천천히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
조계산에는 송광사와 선암사가 우리나라 불교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순천은 다양한 산사의 음식이 발달했다. 순천산사를 즐기기 전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란 말을 되새겨보자. 산사의 만찬은 더덕, 도라지, 연근, 두부, 머위 등 귀한 농산물이 그 주인 공이다. 건강한 재료들로 차렸으니 속도 부담 없다.
역사 - 배울 것 많은 가족여행지 부여
부여는 개성 강한 가족 구성원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다. 머리 맞대고 코스만 잘 짠다면 이번 가족여행 일기의 제목으로 ‘처음으로 다투지 않았던 여름 휴가’가 낙점될지도 모를 일이다.
궁남지는 올해 ‘한국야간관광 100선’에 선정된 유서깊은 가족여행지로 이름이 높다. 낮에는 연꽃을, 밤에는 달빛이 반사된 연못에 취할 수있다. 신라시대 인공호수인 안압지보다 무려 40 여 년 먼저 만들어졌다. 궁남지의 형태에는 신선사상이 담겨 있다.
물론 신선사상이나 조경에 대한 관심 없이도 수양버들이 둘러싼 연못은 그저 무한히 아름 답게 보인다. 만개한 연꽃을 복작복작하게 즐기다가 연못 한가운데에 고요히 자리한 포룡 정을 바라보면 들뜬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다. 퇴근길, 멀리 ‘우리 집’이 보이는 것같은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포룡정으로 향하는 좁고 긴 다리를 가족과 손잡고 건너면 어느새 한동안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꽃피우고 있을 것이다.
궁남지는 연꽃이 개화하는 여름도 아름답지만, 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겨울이나 특유의 색을 뿜어내는 가을과 봄 또한 매력적이다.
성흥산성 끝자락에 자리한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는 그 모양 때문에 유명하다. 이 나무는 동글동글한 여느 나무와 달리 웬일인지 몇 군데 가지가 유독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온 독특한 모양이다. 특정 각도에서 보면 마치 하트모양을 닮아 ‘사랑나무’라 불린다.
하트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 사진에 담아보는 것이 이곳을 찾는 또 다른 재미다. 여러 TV 드라마에도 이 아름다운 나무가 배경으로 담겼다고 한다.유명세를 차치하고서도 400년 된 생명을 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일이다. 이 오래된 나무 앞에서 자신의 뿌리와도 같은 가족을 떠올려보자. ‘네가 가고 싶은 대로 마음껏 뻗어나가 보렴.’ 제 마음대로 뻗어나간 가지는 뿌리로부터 들려오는 이 응원의 목소리에 더욱 힘을 내는 것만 같다. 이곳에서 하트 모양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해도 충분히 괜찮은 이유다.
문화 - 천년 문화의 고향 공주
공주는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문화유산의 도시다. 63년간 백제 도읍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감영이 있으며 동학농민혁명 4 대 전적지인 우금치를 비롯해 유관순, 백범 김구 선생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는 곳이다.
공주의 마곡사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643년에 창건되어 1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 다. 이곳은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1896년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선생이 수감 중 탈옥하여 은거한 곳이 마곡사다.
출가 당시 삭발을 했던 터가 남아 있고,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거닐었을 길은 ‘솔바람 백범 명상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태화산으로 이어지는 산책코스와 트레킹 코스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산사의 평화로움과 잠시나마 번뇌를 내려놓게 해주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인파로 북적이는 관광지의 한옥마을에 지쳤 다면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공주한옥마을로 가보자. 국립공주박물관, 송산리고분군과도 가까워 잠시 둘러보기에도 좋다. 숙박하지 않아도 백제놀이터, 족욕체험장, 북스테이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인절미 만들기, 백제 복식체험, 다도, 백제책 만들기, 국궁 등 다양한 체험도 즐길 수 있다. 또한 도보 20~30분 거리의 금강 변 고마나루 솔밭은 공주 10경 중하나로, SNS에서 사진 명소로 떠오른 곳이니 이곳에서 여행의 추억을 남겨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공산성은 특히 금강의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공산성 안 성곽 둘레길을 걸으면 공주의 구·신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이 간직한 오랜 역사만큼 얽혀 있는 이야기도 많으니 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는 것은 공산성을 두 배로 즐길 수 있는 꿀팁. 근처에는 공주시 음식특화거리인 백미고을이 있어 여행자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줄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공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밤파이, 밤음료도 맛볼 수 있다.
유구색동수국정원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수변에 형형색색과 다양한 수국을 비롯한 수종을 심어 조성한 정원이다. 비용과 관리를 지역 시민이 맡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수국이 만개하는 시기는 6~7 월이지만 해바라기 등 다양한 수종을 식재해 가을에도 유구천의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다.
트레킹 - 걸으면서 여름을 이기는 부안
전라북도 부안은 관광지로는 친숙한 곳이다. 깊고 울창한 변산, 기암괴석이 켜켜이 쌓인 채석강, 천년고찰내소사 등은 이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새로움이란 없을 것 같던 부안에서 청춘 영화 <변산>이 탄생했다. 영화 속 청춘들은 드넓은 갯벌에서 묵은 화해를 위한 질펀한 싸움을 벌이고 마을 뒷산에 주저앉아 어쩐지 슬프지만 언제나 빛나는 노을을 바라본다.
투박한 듯, 촌스러운 듯, 아름답다. 부안은 그런 곳이다. ‘마실길’은 부안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약 66km의 트레킹 코스가 변산반도 해변 쪽으로 나 있어 밀물 때는 힘찬 파도 소리를 듣게 되고 썰물 때는 직접 갯벌을 체험할 수도 있다. 서해 낙조의 황홀경은 덤이다.
마실길 코스 중 2코스인 노루목 상사화길은 변산해수욕장의 남단 움푹 파인 곳에 자리한 송포항에서 출발한다. 송포항선비마을을 거쳐 상사화군락지, 노리목고사포, 성천포구에 이르는 5.3km 정도의 길이며 1시간 15분걸린다. 철책 초소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 조성된 상사화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꽃과 잎이 동시에 있지 못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뜻을 지닌 상사화는 7월 말 개화해 8월에 만개한다.
3코스인 적벽강 노을길은 성천에서 출발해 부안의 빼어난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성천 하섬 전망대에서 출발해 반월마을, 작은당사구, 적벽강, 채석강, 격포항까지 9.8km 의 길이다. 2시간 30분 걸린다. 변산해변의 적벽강은 붉은색 바위와 절벽이 어우러져 맑은 물에 붉은색이 비친다. 석양 무렵 바위가 햇빛을 받으면 진홍색으로 물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5코스는 갯바위 낚시터에 놓은 테크를 따라 걷는 낭만적인 길이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늘어진 모항해수욕장이 대표 구간이다. 송산농장산림수련원, 모항해수욕장., 갯벌체험장까지 이어진 5.4km 구간이며 1시간 20분걸린다. 썰물 때는 조개 캐기, 진흙 놀이 등 갯벌 체험도 가능해 어린아이를 둔 가족 단위 여행객이 반길 만한 곳이다.
몽포해수욕장에서왕포마을에 이르는 6코스의 백미는 쌍계재아홉구비길. 오르막과 내리 막이 반복되지만 원시림과 같은 청정의 숲길을 거닐며 빽빽하게 자란 신우대가 휘어져 만들어낸 터널을 지나면 자연과 하나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6.5km이며 2시간 걸린다.
/최병일 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