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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화장산 전투와 600명 임란의병 ‘거룩한 희생’ 기리다

경북매일
등록일 2025-06-10 19:59 게재일 2025-06-1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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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살피재 넘던 왜군에 대항    
류종개 의병장 이끄는 의병 600여 명 
1600여 명 쓰러뜨리고 장렬하게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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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임란의병전적지 충렬사.

1592년 4월 16만 왜군이 부산에 상륙, 임진왜란이 시작됐다. 5월에 한양 그리고 함경도까지 진격했다. 왜군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의병들이 일어났다. 봉화에서도 1600여 명의 왜군을 무찌르고 장렬히 전사한 600여 명의 의병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류종개 선생은 김중청, 김륵, 김성일 선생과 함께 의병 600여 명을 모집했다. 류종개는 의병장이 되어 훈련을 시키고, 진중규약 16조와 군령 5조의 규칙을 정해 탄탄한 조직으로 만들었다.

왜군 모리 요시나리는 조선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떠난 한양을 점령하고 강원도 삼척에 이르렀고, 원주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때 왜장은 좌의정이자 도체찰사인 류성룡 선생의 일가가 봉화에 피란을 갔다는 첩보를 접하고 류성룡 일가를 붙잡아 안동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류성룡 일가를 붙잡기 위해 두 갈래로 나뉜 왜군은 소천면 고선리에서 현동천을 따라 남하했다. 또 다른 왜군은 소천면 현동을 거쳐 산 능선을 따라 춘양 도심리에 피란 중인 류성룡의 형인 류운룡 등 100여 명의 식솔들을 붙잡기 위해 화장산으로 향했다.

이때가 1592년 8월 22일이다. 류운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모시고 전란을 피할 수 있는 봉화군 춘양면 감동골로 정하고 10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정감록’ 십승지인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왜군은 류성룡 일가를 붙잡기 위해서 화장산을 넘어야만 했다. 봉화의 의병장 류종개는 왜군이 화장산을 넘을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는 임흘, 김인상, 권경, 윤흠신, 권현수, 윤흠도 등 600여 명의 의병을 춘양 감동골로 가기 위한 길목인 살피재에 매복시켜 적군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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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의병전전기념비와 적석봉.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 선발대가 살피재를 지나고 있을 때, 그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활과 칼 그리고 창으로 무장한 봉화 의병은 단숨에 1000여 명의 왜군을 살상하고, 깃발과 말 등을 빼앗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틀 뒤 3000여 명이 넘는 왜군 본진이 살피재에 도착했다. 조총을 앞세운 왜의 대군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병은 조총 앞에 하나둘 쓰러졌고, 결국 600여 명 모두 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봉화 류종개 의병장이 이끄는 600여 명의 의병은 모시 요시나리 왜군 1600여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전투로 인해 왜군은 류성룡 일가를 붙잡는 것은 물론 안동에 진출하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울진으로 물러났다.

왜군이 더 이상 진격을 포기한 채 물러나도록 만듦으로써 임진왜란의 판도를 바꾸었다는 ‘수정실록’이 평가한 봉화 화장산 전투는 대단한 의의를 지닌 싸움이었다. 430년이 지난 지금, 봉화군 소천면 화장산 노루재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쌓은 적성봉과 임란의병전전기념비가 있다.

화장산 살피재에서 전사한 류종개가 이끌던 의병 600여 명을 두고, 조정에서는 이들의 순국충절을 기리어 류종개 의병장에게는 통정대부 예조참의를 증직했다. 또 김인상, 윤흠신,윤흠도와 함께 정려를 내렸으며, 금은 공조참의를 증직해서 공을 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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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공겸암류선생도심촌유적비.

또한 이 전적지를 관리하기 위해 감관 1인과 산직2인을 두어 고종 36년(1899년)까지 지켜왔다고 한다. 왜군 3600여 명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600명의 의병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2006년 사당, 전시관, 의총 등 총 7개동(259㎡) 임란의병전적지 충렬사를 지었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7월 28일(의병전사날) 임란의병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류운룡 선생이 머무른 춘양면 도심리 감동골에는 그가 심었다는 감나무 세 그루 중 두 그루와 옹달샘이 남아있다. 류운룡 선생이 구국기도를 드렸던 기도단이 4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사과 과수원 중앙에 보존되고 있으며, 감동골 입구 도로변에 문경공겸암류선생도심촌유적비가 서 있다.

임진왜란 때 다른 지역 의병들의 활동은 잘 알려진 것과 달리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600여 명의 봉화 의병은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위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봉화 600여 명의 의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널리 알리고, 거룩한 희생이 계승 발전되기를 바란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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