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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아 미안해”…대피했다 돌아오니 소 두 마리만 무너진 집 지켜

피현진 기자
등록일 2025-03-23 17:38 게재일 20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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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안평면 산불 당시 화마 덮친 신월리 신동 마을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주민 김역수 씨의 500여평 마늘밭이 지난 22일 발샌한 산불 열기에 모두 파김치처럼 익어 김 씨가 밭을 살펴보며 한숨 짓고 있다./피현진 기자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주민 김역수 씨의 500여평 마늘밭이 지난 22일 발생한 산불 열기에 모두 파김치처럼 익어 김 씨가 밭을 살펴보며 한숨 짓고 있다./피현진 기자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신동마을에 화마가 덮친 것은 지난 22일 오후였다. 15가구가 살던 이 마을에 화마가 덮치자 주민들은 뒤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대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간신이 몸만 빠져 나온 주민들은 대피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23일 다시 마을을 찾았지만 눈앞의 모습에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을은 온통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고, 직접 화마의 피해를 입은 주택도 있었다.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주민 김민수 씨의 주택이 지난 22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가운데 김 씨가 무너진 집터를 처량하게 바라보고 있다./피현진 기자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주민 김민수 씨의 주택이 지난 22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가운데 김 씨가 무너진 집터를 처량하게 바라보고 있다./피현진 기자

당시 마을 사람들은 산불이 났다던 얘기에 대수롭지 않았다. 최초 발화지점인 괴산리와 신월리는 직선거리로 약 5~6km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산불이 나도 금방 꺼지고 마을 사람들의 일상에는 별다른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금방 꺼질줄 알았던 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을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산불로 인한 연기가 먼저 마을을 가득 매웠고, 이어 불길이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제서야 대피하기 바빴다. 정신없는 상황에 무엇을 챙겨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몸만 빠져 나왔다.

지난 22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김민수 씨의 저택에 소 두마리만 살아남아 돌아온 김씨를 반기고 있다. /피현진 기자
지난 22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김민수 씨의 저택에 소 두마리만 살아남아 돌아온 김씨를 반기고 있다. /피현진 기자

이번 산불로 집이 완전히 전소된 신동 마을 주민 김민수(51) 씨는 “대피했다 돌아오니 집이 완전히 불에 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키우던 소 두 마리만 화마 속에 살아남아 날 보고 울더라”며 “농기계도 다 타버려 당장 농사를 짓을 수도 없고, 짓고 있던 마늘밭도 불어 그을려 제대로 자랄지 모르겠다”고 한 숨을 쉬었다.

실제로 김씨 주택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밤새 불에 탄 주택은 벽돌 더미로 변해있었고, 일부 남아 있는 주택도 화마가 지나한 흔적이 역력했다.

불에 탄 집을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고 있는 김민수씨. /피현진기자
불에 탄 집을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고 있는 김민수씨. /피현진기자

시커멓게 그을린 담장, 뼈대만 남은 경운기 등 성한 곳 없는 자신의 집터를 바라보던 김 씨는 “산불이 마을로 점점 다가오자 급하게 도망쳤는데, 오늘 와보니 우사에 키우던 소 두 마리가 살아있었다 애들 먹이던 짚이 타버려 물이라도 먹이려 했는데 강한 화마에 수도 계량기도 녹아 이마저도 당장 줄 수 없어 마음이 쓰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 씨의 이웃 정상섭(78)씨 집도 화마가 삼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 씨는 “산불이 집 근처를 지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땐 가재도구고 뭐고 모든 게 사라지고, 집터만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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