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두고 시댁 형님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설에는 차례를 지내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한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해서 그저 잘 계시려니 했는데 몸이 아파서 무척 고생하셨단다. 마음이 짠했다. 윗 동서이지만 나와는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엄마 같은 형님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막내 동서를 한번도 야단치지 않고 늘 이쁘게 봐주는 고마운 형님이다. 다섯 형제의 둘째 며느리지만 첫째 아주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 제사며 각종 집안일은 항상 형님이 다 맡아서 해왔었다. 어릴 때부터 고생이라면 진력이 나게 해온 형님은 늦은 나이까지 일을 놓지 못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은 연약한 여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물류센터에서 판매장으로 물건을 배송하는 일이었다. 형님은 체구도 작고 마른 몸이라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에는 취약했다. 거기다 장 수술을 크게 한 적이 있어서 더욱 조심해야 함에도 새벽 4시면 일을 나가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계속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형님을 모델로 쓴 시이다.
“그녀의 다리에는 거미줄이 있네 / 얽히고설킨 푸른 거미줄 / 그녀의 다리에 언제부터 거미가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르네 / 어미의 헌 자궁을 발길질할 때부터인지 / 여덟 달 만에 세상에 나와 / 버둥거리며 울 때부터인지 / 기집애가 배워서 뭐 하냐며 / 아궁이에 던져진 교과서가 불타던 때부터인지 // 그녀의 다리에는 거미 한 마리 사네 /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 남의집살이할 때 / 아마도 거미는 그녀의 슬픔처럼 집을 짓기 시작했으리 / 가난한 남편 만나 식당 종업원으로 돌아칠 때 / 그 다리에서 푸른 핏줄 뽑아내어 / 한 줄 한 줄 지었으리 // 중늙은이가 된 그녀가 / 물류센터에서 온갖 상자를 나를 때 / 다리에 지어진 그 집 푸르게 울었네 / 뒤엉킨 슬픔들이 이무기처럼 울었네”- 엄다경 시 ‘하지정맥류’
작은 몸으로 무거운 물건을 오래 나르다 보니 형님 다리에는 시퍼런 하지정맥류로 가득했다. 그걸 보며 마음이 아파서 썼던 시이다. 이번에는 더는 버티지 못한 무릎이 완전히 고장이 난 모양이다. 양 무릎을 다 수술하고 회복하느라 고생 고생한 소식을 듣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그동안 못 배운 죄로 몸 무너지는 줄 모르고 죽자 살자 일만 하고 산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며 울먹이는 가여운 분. 내 아픔 아무도 모르더라며 이제 내 몸 아끼면서 나만 생각하고 살겠다고 하소연한다. 형님을 보면 한 세대 차이인데 우리 윗세대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지난했는지가 보인다. 여자라고 못 배우고 순종하는 삶만 살아야 했던 가슴에 한이 가득한 분들. 어쩔 도리 없는 시대의 슬픔에 마음 먹먹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넘치는 시대, 지금을 사는 젊은 층은 윗세대 어른들의 이런 희생과 노고를 얼마나 알까 싶다. 변화하는 시대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금의 삶이 이렇게 여유 있고 풍요로운 데에는 한 시절을 온몸으로 밀고 살아 내어온 분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공부하는 내게 자신은 못 배운 게 한이라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하다며 엄마처럼 늘 응원해주던 고마운 형님. 곧 영양제라도 사 들고 가서 맛있는 밥 한번 대접해야겠다. /엄다경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