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 민족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전후 처리를 위해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가 그것이다. 한 민족이 그들 국가의 독립 문제를 스스로 결정짓게 한다는 이 말은 소수민족, 그리고 압제에 시달리는 약소민족에게 독립의 열정과 불가능은 없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우리나라 3·1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민족이라면 어느 누구로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고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실현한다’는 외침이 억압에 길들여진 약소민족 가슴을 막무가내로 울려댔다. 우리나라는 물론 독립투사들이 민족주의자로 불리게 된 때도 이때부터다. 민족주의에 대한 성공은 평등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우리민족 역시 실체에 대한 믿음은 일제강점기 식민시대 속 저항을 통해서 생겼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발칸반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새롭게 생긴 패러다임, 즉 민족 방어를 위해 배타적 민족주의의 네이셜리즘(Nationalism)과 언어, 종교 등 문화적 요소에 따라 구분 짓는 문화적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가 본격적으로 기세를 울리며 불씨로 자라났다.
민족과 국가를 동일선상에 놓는 서유럽 민족주의는 경제 범위와 영토가 대부분 일치하면서 국적을 따지는 ‘정치적 민족주의’로 정의한다. 이는 민족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며 충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발칸반도는 달랐다. 혈통이 중요시 되면서 언어는 물론이고, 역사와 체험의 공유, 더불어 종교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문화적 민족주의’였다. 민족과 국가는 별개이며 국가에 충성하기보다 민족이 우선이었다. 그런 까닭에 신화가 떠받들어지고, 우리 민족끼리 독립이라는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꿈으로 연결된다.
발칸반도는 혼란한 역사를 거치면서 거듭된 이합집산을 경험했다. 여러 민족이 뒤섞여 있었으며, 민족의 경계와 영토란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 따라서 발칸반도 민족주의는 폭력을 품고 태어난 ‘이질적 민족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칸반도를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은 제국의 그늘에서 막 벗어나면서 민족주의자들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그들의 민족주의는 민족결집에 의미가 궁색했던 까닭에 미래를 과거에서 찾았다. 과거를 이 잡듯이 뒤져 가느다란 실마리라도 발견하면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민족영웅으로 스토리텔링했다. 신화는 물론, 역사적으로 가장 화려했던 시기만을 잘라 민족정기를 일반화 하면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민족 우상화 작업으로 민족 태생적 우월주의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집권세력은 민중을 길들이고자 이를 교묘하게 정치에 적용하면서 폭력마저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민족내부의 이질적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발칸반도 모든 나라가 독립투쟁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네 독립운동사에서 보듯 발칸반도 나라 역시 의기에 혈기까지, 풍찬노숙을 당연하게 여기며 독립투쟁에 매진했던 투사들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큰 그림을 놓고 보았을 때 아쉽게도 스스로 힘으로 광복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 힘의 논리에 의해 독립을 이룬 나라가 대부분이다. 주권은 있되 자주는 없는 이상한 체질, 강대국 품을 벗어나면 금방이라도 뇌정지에 빠질 허약한 나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민족은 자신의 나라를 가질 권리가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공인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을까.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강대국의 섬세하고도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승전국끼리 패전국을 조각조각 갈라놓아야 했다. 후발 제국 도이칠란트로부터 벌어진 전쟁의 뼈아픈 경험을 잊지 않았다.
승전국은 작은 나라와 소수민족을 부추겨 착하고 말잘 듣는, 사람과 땅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면서,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게 새판을 짰다. 그 중심에는 영웅놀이에 재미가 든 지도자를 뽑고 가슴이 요동치는 장엄함을 맛보면서 정신까지 발기해버리는 자칭 민족지도자가 있었다. 서구유럽 입장에서 보면 말잘 듣는 지도자이자, 고매한 인품을 지닌 인간이었다.
발칸반도의 무기력은 마치 우리 해방정국과 흡사했다. 보릿고개 넘기기조차 힘에 겨웠건만, 친일청산은커녕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정당과 자칭 애국지사 등장, 반공이라는 구호로 무지한 백성의 부추김, 그리고 연이어 터진 한국전쟁은 기사불능 상태로 몰아갔다.
그러나 극동 아시아에 공산정권의 마지막 저지선으로 강대국의 지원과 태생적 부지런한 배달민족 희생 속, 선 성장 후 분배의 기치에 묵묵히 순응하면서(분배의 정의가 혼탁해지긴 했지만) 기적과도 같이 세계 속 대한민국이 우뚝 설 수 있었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