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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민족주의 ① 우리(We)와 그들(They)

등록일 2024-12-30 18:52 게재일 2024-12-3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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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외젠 들라크루아作). 자유와 평등, 우애(박애)의 이념을 표방한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봉건적 구체제와 절대왕정에 대항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역작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것은 본능이라고 하였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와 너로 구분하는 민족, 즉 네이션(nation)이란 19세기 이전에는 없던 말(단어)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디 국민인가라는 의식이 지금처럼 개인의 정체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말하는 ‘민족(民族)’이란 단어도 일본에서 군국주의 망령이 기승을 부릴 때 nation을 ‘민족’으로 번역하면서부터다.

민족이란 말은 라틴어 ‘이방인 집단(Natio)’에서 기원한다. 단순하게 ‘무리’에서 사람간의 계급이 생기면서 ‘평민(Pleb)’이라는 단어로 연결되고, 16세기에 들어와서 영국에서 대중들을 뜻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들’이 추가되면서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이 생기고 배타적 개념으로 변했다.

18세기의 유럽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더구나 미국의 독립전쟁이 일어나면서 세계는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연이어 프랑스혁명이 촉발되며 자유와 평등, 우애(박애)의 이념을 표방한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봉건적 구체제와 절대왕정에 대항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어쨌거나 이로 인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탄생이라는 터전을 닦은 셈이다.

급격한 산업의 발달로 중산층이 확산되고, 금권(金權)이라는 경제권을 쥔 새로운 계급층이 형성되면서 봉건제 속 타고난 운명을 깨트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기존의 사회질서와 정치체제에 도전의식이 심어지면서 대중은 지배계급에 반등의 기회를 찾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백 년 동안 제국 압제 속에 주변인으로 받아낸 박해와 국경이랄 것도 없는 힘없는 부족으로 살아온 사람들 최후의 선택이었다. 외세의 지배에서 받은 고통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속성을 간파한 자칭 민족주의자 등장은 우리끼리라는 닫힌 민족주의로 역사를 되살려 스토리텔링을 가미했다.

즉 대중에서 탄생된 지도자 의도에 따라 변질되거나 타락적 속성인 민족주의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과거 피지배계급을 향한 강압적인 명령과 수직계통에서,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충성스러움이 저절로 우러나오게끔 하는 데에는 우리라는, 우리끼리 공유라는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만큼 좋은 소재가 없었다.

이때 발칸반도에는 이질적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미래 폭력의 판이 짜이고 있었다. 발칸반도는 예부터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접목되면서 이것이 역발효 과정을 겪으면서 피와 살육으로 변해버린 아픔의 땅이다. 에게문명을 필두로, 그리스 민주주의,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로 인한 헬레니즘, 로마 지배하의 기독교권, 동방정교와 로마가톨릭 분열을 거친 후 오스만 이슬람에 이어 두 차례 세계대전 중심에 서는 등 인류 긴긴 폭력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 한다.

그리고 마지막 과정인 제국주의에 발버둥 치면서 탄생한 것이 저항민의 승리이자, 질긴 민족주의다. 발칸반도 각 나라들은 미국 독립선언과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촉발된 이래 1923년 오스만터키제국이 붕괴되고 19세기를 지나면서 그 정체가 드러났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종족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하면서 민족주의는 비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더욱 탄탄하게 다져졌다.

거슬러 오르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발칸반도를 술탄의 무슬림 지배에서 기독교를 앞세운 자신들 전제왕조의 발아래 놓으려는 야심찬 계획은 유럽 각국 반발을 불러왔고, 크림전쟁을 비롯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터키와 러시아가 치고 박는 것을 구경하면서 영국, 프랑스는 물론이고, 서유럽 나라들 계산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스 독립운동’(외젠 들라크루아作). 그리스는 400여 년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서구문명에 자존심을 구겼다. 서구 열강들의 그리스 사랑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리스 독립운동’(외젠 들라크루아作). 그리스는 400여 년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서구문명에 자존심을 구겼다. 서구 열강들의 그리스 사랑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러는 사이 고만고만한 여러 부족과 민족이 통일국가로 거듭났다. 그리스도 이때를 놓치지 않았으며, 남아메리카의 대부분 나라도 줄줄이 독립에 동참하며 새로운 민족국가로 탄생하면서 국제질서에 새로운 판이 짜이고 있었다.

광대한 영토를 거느리고 있는 전제군주국에 대한 해체작업의 일환으로 서구 강대국에 의한 펌프질도 있었다. 즉 오스만터키제국과 오스트리아제국 치하에 있던 나라, 여러 부족에게 독립이라는 새싹위에 희망의 물줄기를 뿌려대는 서유럽국가들 노력이었다.

긴박한 국제정세는 말보다 발길질이 빠르다. 서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시작으로 발칸반도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에 이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까지 기습적으로 점령해버렸다. 이때 대세르비아주의가 급부상하면서 기다렸다는 듯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그리고 파괴와 죽음, 살육 등 발칸반도에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승자의 막강한 끗발을 이용한 서유럽 강대국은 그동안 오스만터키와 오스트리아의 영토에 들어 있던 발칸반도와 중부유럽은 물론 중동까지 도토리 같은 나라 탄생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형에게 말 잘 듣는 고만고만한 아우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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