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롭게 생긴 습관이 있다. 사람들의 눈을 관찰하는 것.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을 쳐다볼 자신은 없지만, 누군가와 한 뼘 가까워졌다고 느끼면 나의 시선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향한다. 눈은 누구도 속일 수 없는 명명백백한 세계처럼 느껴진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눈동자를 마주하노라면 온 우주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버릇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바쁜 나날 속에서 내 안의 괴로움과 상반되게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요즘이다. 정신없이 일하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기조 때문일까.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일상을 전부 버려서라도 일에 매달리는 모습에 오히려 박수를 받으면서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내 안에는 웅크리고 울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겉으로는 더 크게 웃고 더 빠르게 걸었다. 엉켜있는 내부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고민 있어요?” 함께 일하는 동료의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업무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겉으로는 전투적인 기세로 일하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피로와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있던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타인이 그것을 눈치챌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입으로 뱉는 말은 얼마든지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다. “고민 같은 거 없어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상대는 계속해서 미심쩍음을 느꼈다. 나아가 어째서 내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괜찮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파악할 줄 안다는 것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나 자신은 언제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는가? 무엇을 선택하고 또 무엇을 피해야 안정감을 느끼는가? 그것은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선택지를 늘리거나 줄이는 일이 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일은 타인으로 확장될 수 있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시선으로 바뀌게 된다.
나는 힘들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동료가 믿지 않은 이유는 내 안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오의 소나기처럼 요동치는 눈동자를 포착한 순간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은 거짓이 된다. 나는 계속해서 내 상태를 제대로 말해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 실패야말로 나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불명확한 감정들 사이에서 간신히 길어 올린 말은 나를 우려하는 동료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내게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기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지만 상대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에서 기인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폴 오스터가 말했던 것처럼. “누구도 경계를 넘어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바로 그 간단한 이유로.”
안희연의 시 ‘나의 시드볼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는 귀신같이 내 눈빛을 읽는다/누가 누굴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네/너는 나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어” “한 방울씩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거야, 그게 너의 영원이야”,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 새는 곳은 없다/그래도 물이 떨어진다”
시인이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는 영원히 ‘나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한 방울씩 물 떨어지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물이 새고 있는지 찾아봐도 눈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틈을 통해 우리는 매일 증발하고 있다. 그러한 기류를 눈치 채고 안부를 물어와 주는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상대의 눈을 바라본다. 그에 관해 무언가를 알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명확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