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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를 채우는 방법

등록일 2024-10-28 18:47 게재일 2024-10-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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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를 채우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canva

최근 음악계의 동향 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 미국의 밴드 린킨파크의 복귀 소식이었다. 나는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린킨파크가 그 여정을 멈춘 까닭은 보컬리스트이자 핵심멤버인 체스터 베닝턴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린킨파크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를 찾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일정하게 쭉 뻗는 가운데 적당히 목을 긁어서 파괴력을 극대화한 그의 보컬 스타일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 따라하다가는 한 곡도 채 부르지 못하고 쇳소리 섞인 기침을 연신 내뱉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존재 자체가 기적이었고, 기적이 두 번 일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린킨파크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나는 밴드 저니의 사례를 떠올렸다. 체스터 베닝턴 이전에 존재했던 불세출의 보컬 스티브 페리가 저니를 떠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 저니는 재기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티브 페리가 누구인가. 1980년대를 주름잡던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모여 녹음한 ‘위 아 더 월드’ 녹음 현장에서도 단연 발군의 기량을 뽐냈던 세계 최고 수준의 보컬리스트가 아니었나. 그런데 저니는 뜻밖의 장소에서 스티브 페리의 완벽한 대체자를 발견해냈다. 바로 필리핀의 식당과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무명의 보컬 아넬 피네다였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동양의 언더그라운드에 그들이 찾던 보석이 있으리라 저니의 멤버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들은 결국 찾아내고 만 것이다.

그런 기적이 또 일어났나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린킨파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스터 베닝턴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린킨파크의 새로운 보컬리스트는 뜻밖에도 여성이었다. 새 멤버 에밀리 암스트롱의 보컬이 체스터 베닝턴의 그것과 공통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성의 보컬로 남성의 보컬을 대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들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페인트’도, ‘인 디 엔드’도 내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곡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과거의 향수를 잠시 미뤄두고 다시 들어 보니 나름 신선한 느낌이 들고 또 다른 매력을 가진 곡으로 재탄생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들이 함께 만들어 발매한 신곡은 여태까지 린킨파크가 걸어온 것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었지만 분명 진보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커다란 부재가 발생했을 때 과거에 존재했던 대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대체재를 찾는다면 그것은 가장 편리한 방식의 대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반드시 그것만이 옳은 방식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린킨파크의 음악을 듣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혀 다른 성격의 대체재로 부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방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무형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무언가 잃으면 그것과 딱 들어맞는 것을 찾게 되고,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깊은 좌절에 빠지기 일쑤인데 그럴 필요가 없었구나. 상실을 기점으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때로는 그 부재를 비슷한 성격의 대체재로도, 다른 성격의 대체재로도 메우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뜸 떠오른 이들이 한국의 보이그룹 중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팀인 ‘샤이니’이다. 그들 역시 걸출한 메인보컬을 안타깝게 잃었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중 앞에 돌아와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남은 네 명의 멤버들이 5인조 시절 때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실력과 존재감으로 메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구멍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인보컬이 아니었던 모든 멤버들이 메인보컬의 역할을 수행해내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라는 노랫말이 등장한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잃고, 되찾지 못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내가 최근 찾은 것만 세 가지가 있다. 잃은 것과 딱 들어맞는 것을 찾는 것, 전혀 다른 대체재를 찾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 여전히 남아있는 자원들을 적극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것. 마냥 슬퍼만 하고 좌절만 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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