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낙엽을 밟는 소리와 함께 술이 익어가는 소리에도 귀 기울여보자.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에서 빚어지는 술은 최고의 풍미를 자랑한다. 술이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어우러진 가을날, 양조장이 있는 여행지로 떠나 가을의 깊은 정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술 익어가는 향기에 마음이 한결 더 들뜨고 자연이 품어낸 고요함 속에서 기분 좋은 설렘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 70여 양조장 술을 한 곳에, 서천 한산소곡주갤러리
‘소곡주’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우리 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로, 전통주의 깊은 맛과 역사를 간직한 특별한 술이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을 비롯해 기산, 화양, 마산면 등 옛 한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곡주가 바로 한산소곡주다. 농산물 지리적 표시 제110호로 고창 복분자주, 진도 홍주에 이어 세 번째로 등록된 전통주로, 오직 이 지역 내에서 재배된 지역 재료를 사용해야만‘한산소곡주’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서천군은 현재 70여 가구가 양조장 시설을 갖추고 주류제조면허를 보유한‘술 익는 마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양조장이 몰려 있다. 이 마을에서 양조된 술은 마치 김치나 장맛처럼 양조장마다 다른 개성을 띤다. 기본적으로 쌀에 누룩을 더해 밑술을 만들고, 고두밥으로 덧술을 하는 제조 방식은 유사하지만, 각 가구마다 몇 대에 걸쳐 내려온 비법과 재료가 달라 70여 양조장의 술맛은 같은 듯 다르다. 한산소곡주갤러리에서는 70여 개의 양조장에서 생산한 한산소곡주를 전시하고 판매하며 매주 5개의 양조장이 돌아가며 무료 시음을 제공한다. 이곳에 방문해 다양한 양조장의 소곡주를 직접 맛보며 소곡주가 지닌 풍부한 매력에 흠뻑 빠져보자.
◇ 막걸리에 관한 명품적 사고, 해남 해창주조장
전남 해남군에 있는 해창주조장은 고가의 명품 막걸리를 만들며 유명해졌다. 1927년 일본인 시바타 히코헤이가 문을 열었던 해창주조장은 9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오병인씨는 여행을 좋아해 국내 곳곳을 다니다 해창주조장을 알게 되었고 막걸리 맛에 반해 주조장을 인수 했다고 한다.
오 대표는 막걸리가 1만~2만 원이면 고가라고 여기는 상식의 틀을 깨고자 프리미엄 막걸리, 해창 막걸리를 제작하고자 했다. 대신 특별한 재료와 제작 기법을 사용하고있다. 해창 막걸리는 해남에서 재배한 유기농 찹쌀에 멥쌀을 일부 섞어 만든다. 찹쌀과 멥쌀의 비율은 8:2. 특히 찹쌀은 오 대표가 오랜 연구 끝에 찾은 답이다. 본연의 은은한 단맛이 있어 인공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감칠맛이 난다. 그 맛은 애주가들이 먼저 알아챘다.‘식객’의 허영만 만화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이 해창막걸리의 팬이다.
해창주조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 막걸리의 맛에 반할 뿐만 아니라, 주조장 자체의 아름다운 공간에도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일본식 가옥을 간직한 살림집과 40여 종의 수목으로 이루어진 2500여㎡ 규모의 정원은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전통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곳은 해창 막걸리의 맛과 더불어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