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에 자리한 종오정도 뿌옇게 잠에서 깨기 전이다. 그런 모습을 담으려는 사진작가 몇이 우리보다 먼저 당도해 삼각대를 세워놓았다. 배롱나무는 꽃을 피워 한창 붉고, 연못에 연꽃은 반쯤 진 상태다. 황소개구리 한 마리가 소울음을 울어 골짜기의 아침을 깨운다. 고요한 풍경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종오정 지붕의 기와 뒤로 안개가 산을 기어오른다.
고개 너머 보문단지로 들어서니 벚나무 가로수가 터널을 이뤘다. 터널 끝에 한 점 남은 안개가 햇살에 밀려난다. 햇발이 뜨거워지기 전에 해바라기밭을 거닐었다. 사진 몇 장 찍었을 뿐, 오전 8시인데 벌써 정수리가 뜨겁다. 시원한 카페를 찾아 브런치로 아침을 먹었다. 이제는 뜨거우니 어디로 가면 좋을까 의논하다가 시원한 바람의 언덕이 떠올랐다.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불국로 1056-185라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치고 달렸다. 문무대왕면이라 해서 감포 바닷가 쪽인가싶지만, 불국사 방향으로 길 안내를 한다. 따라가다 보면 석굴암으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이다. 한참 구불거리다가 석굴암 방향과 감포 방향의 갈래길이 나온다. 감포 쪽으로 우회전하면 내내 가파르던 길이 조금 쉬어가듯 편안해진다. 드라이브 길로 안성맞춤이다. 여기쯤이면 경주 시내 온도보다 5도 정도 내려가 창을 열고 달려도 된다. 녹색의 나무 그늘과 매미 소리, 산새 소리가 묻은 자연 바람을 느끼니 살 것 같다.
5분쯤 달리니 경주 풍력발전단지 부근인지 거인 같은 바람개비가 휭휭 날개를 돌린다. 토함산의 이웃 산인 조항산 정상부에 커다란 바람개비 여러 개가 돌아간다. 친환경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해 한국동서발전과 동국S&C가 건설한 상업용 풍력발전단지로 총 7기의 풍력발전기가 가동 중이다. 1만여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인 평균 4만mwh 정도의 전력을 연간 생산한다.
산 능선을 따라 띄엄띄엄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바람의 언덕’으로 부르는 이 일대를 365일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풍력발전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 ‘경풍루’ 전망대와 함께 바람길 산책로, 피크닉 테이블존 등이 갖추어져 있다. 경풍루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치가 그저 그만이다. 산책로 곁에 여름꽃인 목수국이 하얗게 절정이었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별명에 맞게 시원한 바람이 쉼 없이 불었다. 폭염에 밤새 에어컨을 끄지 못하고 지내느라 냉방병이 생겼던 터라 능선을 타고 달려오는 바람에 다들 마음과 몸을 다 내려놓았다. 어떤 이는 정자 밑에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버렸다. 다들 산을 내려가기 싫은 눈치다.
경주풍력발전단지는 일몰 노을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졌다. 해질녘에 찾아와 언덕 아래를 향해 차 트렁크를 열어놓고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로 주말엔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데크에 캠핑 의자를 놓거나 전망대, 바람길 산책로 등 곳곳에서 석양을 감상하기도 한다. 더러는 일몰 후 조금 더 기다려 별빛 쏟아지는 낭만적인 밤까지 즐기고 가는 이들도 많다. 차박하려면 아직 시설이 완벽하지 않아 좀 불편하다. 시설에서 운영하는 화장실을 빌려 쓰는데 가끔 생각 없이 쓰는 사람들로 인해 폐쇄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문이 붙었다. 애견도 동반 가능하다는 이곳, 시원한 여름 피서지로 오래 아름답게 사용하면 좋겠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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