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트루크, 이슬람제국을 강성하게 만든 원인이자, 제국이 하향곡선을 그리게 한 가장 큰 요인, 폭력의 시대 한가운데를 장식했던 그 이름 ‘예니체리’다. 어느 사학자의 표현처럼 어찌 보면 그들도 가혹하고도 슬픈 피해자이다.
예니체리는 오스만제국 3대 군주, 엄밀하게 초대 술탄이었던 무라트 1세에 의해 창설되었다. 1389년 6월, 마지막 십자군과 코소보에서 싸우다 세르비아 영웅 밀로슈 오빌리치 칼에 죽은 무라트 1세는 1363년 발칸반도에 진출한 뒤 예니체리 탄생에 박차를 가했다. 종교와 사상, 시대적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술탄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을 정예부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슬람제국은 군인징집에 있어 까다로운 규칙이 있었다. 일단 외아들은 제외됐다. 대를 잇는 것이 우리 조선이란 나라만큼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튀르크 인을 비롯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 역시 징집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한 종교 아래 연결된 같은 형제라는 이유다. 정체성 등 뿌리를 알 수 없는 고아와 떠돌이로 살아간다고 해서 하류 취급을 당했던 집시, 전과자, 그리고 복종을 모르는 유대인 역시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다 보니 군사 충당요건은 한계에 다다랐다. 때마침 제국이 전쟁에 연승을 거듭하면서 전쟁포로가 많았다. 데브시르메(Devsirme), 즉 전쟁포로 중 소년징발과 공납이란 방식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있었다. 무라트 1세는 기독교인 중 건강한 혈통과 건강한 몸, 지혜를 두루 갖춘, 청소년을 뽑아 훈련시켰다.
이들은 주로 발칸반도에서 차출했는데 이들이 예니체리다. 이렇게 부모에게서 강제로 떨어져 나온 후 특별한 장소에 흩어져 가장 먼저 이슬람으로 개종 당했다. 그리고 고된 훈련으로 몸과 마음을 담금질 당해야 했다. 튀르크 말을 익히고, 정해진 기간에 무슬림 전사로서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런 후 이스탄불 궁정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마쳐야 온전한 예니체리가 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예니체리는 철저하게 술탄의 노예로 길들어졌다. 술탄에 무한충성, 술탄의 명령에만 절대복종했으며, 황제의 친위대를 겸하며 궁정 수비는 물론 국경의 수비도 이들 임무 중 하나였다. 엄격한 규율 속에 군영에서 독신으로 생활하며 사치는커녕 경제활동 또한 금지됐다.
최정예부대였던 만큼 최신식 무기로 무장했고, 술탄 이외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궁정반란이 일어나면 술탄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다 술탄이 죽으면, 곧바로 새로운 술탄에게 충성하는 맹목적이면서도 오로지 술탄을 위한, 술탄으로선 가장 충성스러운 병사들이었다.
코소보전투에서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한 십자군이 무라트 1세의 아들 바예지드에게 전멸당한 후 그곳 출신 전쟁고아들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가 공격했을 때 술탄 바예지드를 위해 결사항전 했던 예니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세르비아 출신들이었다. 부모의 원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것이다. 19세기 중엽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의 열망이 들끓을 때, 반란 지도자를 죽이고, 세르비아 농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이들도 예니체리였다.
나날이 발전한 예니체리 부대는 16세기 무라트 3세에 이르러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튀르크 출신도 예니체리 신분이 될 수 있었기에 기독교도 청소년은 제외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예니체리는 적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내부적으로는 정치에 깊게 관여하면서 골칫덩이로 떠올랐다. 장군과 재상의 지위에 오를 만큼 막강한 권한을 누리고, 술탄의 약점을 잡아 위협과 공포정치를 일삼기도 했다. 심지어 그들의 뜻에 맞지 않을 경우 황제를 암살하는 등 국정농락에 앞장서면서 제국의 세기말적 현상을 두드러지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 집중되면 초심은 사라지고 부와 함께 쾌락이 따른다. 이것이 반복되면 이물질이 스며들며 고이게 되고 반드시 부패한다. 1826년 30대 술탄 마흐무트 2세는 새로운 질서를 위해 일련의 개혁에 성공하면서 수만 명의 예니체리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예니체리는 튀르크 말로 ‘예니센’, 즉 ‘새로운 병사’들은 이렇게 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천애 고아를 만드는 반인륜적인 방법으로 모집해 양육한 전쟁의 소모품이자, 용감한 군인들이었고, 500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폭력의 한 가운데 자발적 희생양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의무라 여겼다.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초심이 사라지자, 욕망이 대신했다. 그리고 그들은 처절한 멍에를 뒤집어쓴 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카루스 패르독스(Icarus Paradox)란 말이 있다. 성공이 실패를 초래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교만하지 말라.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