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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스러져 ‘아침이슬’이 된 ‘대학로의 별’ 김민기

홍성식기자
등록일 2024-07-22 20:31 게재일 2024-07-2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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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산실 ‘학전’ 이끌던 예술가 <br/>민중 지향적 음악으로 무대 활동<br/>한국 뮤지컬의 전설 ‘지하철 1호선’   <br/>대표곡 ‘아침이슬’ ‘상록수’ 등 남겨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 거의 모두가 작곡가이자 가수, 뮤지컬 연출가이자 극장 학전(學田) 운영자였던 팔방미인 예술가 김민기(1951~2024·사진)의 사망 소식을 알린 22일. 이 한 줄의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렇다.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 그 진가가 드러내는 법. 김민기는 생전에도 자신의 능력을 환금(換金)하겠다는 욕망과는 무관하게 살았다. 그러니, 사후에 무슨 꽃과 돈이 필요하겠는가? 그의 유언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이 말 앞에선 ‘과연 김민기답다’라고 할 수밖에.

1970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김민기는 그림이 아닌 포크 음악의 매력에 빠진다. 홍안(紅顔)의 열아홉 소년 김민기의 가슴을 저리게 했던 건 또 있었다. 평생 일해도 결코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달동네 사람들의 삶이 바로 그것. 이는 김민기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인텔리겐치아 의식에서 벗어나 민중지향적인 음악을 만들어 무대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대 철학과를 다닌 소설가 김영현(69)은 신림동 판자촌에 사는 헐벗은 아이들을 보며 ‘나 혼자 공부해서,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0년대 군사독재는 영민하고 이타적인 청년들을 겁박하고 감옥에 보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시대 속에서도 김민기는 돌올한(두드러지게 뛰어난) 예술적 성과를 삶 내내 보여줬다. ‘아침이슬’을 필두로 ‘가을 편지’ ‘상록수’ ‘꽃 피우는 아이’ ‘늙은 군인의 노래’처럼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노래를 만들었고, 시인 김지하(1941~2022)가 쓴 희곡 ‘금관의 예수’ 극음악을 작곡했다.

1974년 군대에선 “너의 노래가 유신 반대 운동에서 불리고 있다”는 이유로 보안대 조사를 받고 영창도 갔다. 하지만, 그런 수난도 김민기의 의지와 예술적 열정을 꺾지 못했다. 노래극 ‘공장의 불빛’과 한국 뮤지컬의 전설이라 불러도 좋을 ‘지하철 1호선’은 사라진 김민기와는 무관하게 아주 긴 세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후대는 2024년 7월 21일을 ‘겸양하고 사심 없던 예술가 김민기가 타계한 날’로 기록할 터. 

김민기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유족으로는 아들 둘과 아내가 있고,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 장지는 천안공원묘원.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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