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안동시 길안면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길안으로 들어서자 길옆의 휴경지에 은행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가로수도 모두 은행나무였다.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려 그립던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반가웠다.
‘용계의 은행나무, 지례예술촌’이란 도로 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었다. 두 곳으로 유람해 보기로 했다.
먼저 용계의 은행나무로 향했다. 길가에는 온통 은행나무였다. 지금은 청록이 마음을 사로잡지만, 가을 단풍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길이었다.
초입의 표지판 이후 이정표가 없었다. 혹여 지나칠까, 창밖을 주시하며 달렸다. 저수지가 시작되고 물길을 계속 따라가니 드디어 ‘용계의 은행나무’ 안내판이 보였다. 주차장이 없어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웠다. 호수 속에 우뚝 선 섬 한가운데 엄청난 규모의 은행나무가 보였다. 든든한 석조 다리도 놓여있었다.
용계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700년 정도로 추정, 높이 31m, 둘레가 13.67m가 되는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 천연기념물 175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원래는 용계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다. 90년대에 임하댐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올리는 특수 공법으로 성토하고 가산을 만들어 현 위치로 들어 올려 심은 것이다.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 탁순창(卓順昌)이 낙향하여 은행나무 계(契)를 만들어 나무를 보호하고,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한다. 현재 마을은 사라졌지만, 탁 씨의 후손들이 해마다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떡 버티고 선 은행나무를 본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무의 규모에도 압도 되었지만, 그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이 위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철 구조물을 의지하며 꿋꿋이 살아남은 것이 감동이었다.
은행나무 주변에는 단풍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호수가 보이는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놓아 앉아서 여유롭게 자연에 취해 쉬어가기에도 좋아 보였다. 녹음의 은행나무도 아름답지만, 가을에 단풍으로 어우러진 노란 은행잎 주단은 또 얼마나 예쁠까. 올가을 꼭 다시 오리라 기약하면서 다음 행선지 지례예술촌으로 출발했다.
사실 지례예술촌은 접근도 하지 못했다. 10km가 넘는 거리를, 그것도 4km가 남은 시점부터는 곡예를 하듯 구불구불한 산길을 조심스레 운전해서 도착하였다. 4km 지점에서 숙박 객에게만 개방된 시설이란 이정표가 있었다. 예술촌의 고즈넉한 풍광이 너무도 궁금하여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막다른 길에서 맞은 차단시설에 돌아서는 위치에서 예술촌은 보이지 않았다.
지례예술촌을 검색하면 ‘예술창작마을로 유명한 마을, 예술촌은 안동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생긴 마을이다.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가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현 지례예술촌의 촌장인 김원길 씨가 1986년부터 수몰지에 있던 의성 김 씨 지촌파의 종택과 서당, 제청 등 건물 10채를 마을 뒷산자락에 옮겨지었다. 이 마을은 1990년에 문화부로부터 예술창작마을로 지정받아 예술인들의 창작과 연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예술창작마을로서 역할을 했고, 안동을 알리는 일에 공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숙박 객에게만 개방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일반인에게는 개방되지 않는 시설인 만큼 도로 안내 표지판에 숙박업체란 표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초입의 표지판과 중간지점의 이정표에는 어디에도 숙박업체란 표시는 없었다.
도로 안내 표지판, 지역의 명소를 알리는 관광 안내판의 역할이 크다. 지자체에서는 불친절한 안내판을 좀 더 친절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기회로 여행하는 장소에 대해 사전 검색을 철저히 해야 되겠다는 반성도 하였다.
/손정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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