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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해병정신

등록일 2024-06-26 18:27 게재일 2024-06-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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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국민에겐 봉사하는 양이 되고, 적과 맞설 때는 사나운 사자가 돼라.” 해병대 초대 사령관 신현준의 말이다. 이게 바로 세칭 ‘해병정신’의 골자.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해병대가 보여준 용맹과 견인불발(堅忍不拔)은 여타 군(軍)을 압도했다. 오죽하면 미군 정보장교가 “한국 해병대는 귀신도 잡아낼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을까.

전투에서 보여준 ‘사나운 사자’와 같은 해병정신은 창설 직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발군(拔群)이었다. 이에 이견을 낼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해 물난리로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을 때 갓 스물을 넘긴 어린 해병 한 명이 75년 전 자신이 몸담은 부대를 만든 최고 지휘관의 슬로건 중 또 다른 하나를 실천하다 숨졌다.

2023년 7월 19일. 수해가 난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찾던 해병1사단 소속 채수근 일병이 급작스레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고통 받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양’이 되고자 했던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

전쟁 때는 사나운 사자로, 수난을 겪는 국민을 위해선 봉사하는 양으로 위국헌신을 몸과 마음에 새겼던 해병대원들. ‘해병정신’을 실천하다 숨진 이들 모두는 귀하디귀한 우리 아들들이다. 전투 중에 산화했건, 대민봉사 현장에서 생명을 잃었건.

그런데 이상하다. 군대는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 그럼에도 숨진 채수근 해병을 ‘국민에게 봉사하는 양이 되라’고 명령한 사람이 불분명하다.

임성근 해병1사단장은 “지휘가 아닌 지도를 했다”하고, 그 아래 여단장은 “임 사단장이 지시했다”고 말한다. 유치한 말장난 같다. 묻고 싶다. 어린 해병의 죽음 앞에 고위급 장교가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해병정신 중 하나인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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