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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다부동 전투

등록일 2024-06-25 18:42 게재일 2024-06-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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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구 논설위원
우정구 논설위원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국군과 북한군과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로 손꼽히며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격렬하게 싸웠던 베르됭 전투와 비교된다 하여 동양의 베르됭 전투라고도 부른다.

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은 무기와 훈련이 부족했던 국군을 연이어 물리치고 전쟁 발발 사흘만인 28일 서울을 함락한다. 7월 20일 대전을, 7월말 목포와 진주를, 8월초 김천과 포항까지 함락시킨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8월 15일까지 부산 점령을 목표로 낙동강 방어선에 가용 병력의 절반을 배치했다.

그러나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국군 1사단 병력과 미군 2개 여단의 강력한 저항으로 북한군 일방의 전투가 낙동강 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밤사이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로 다부동 골짜기는 능선마다 고지마다 시체가 쌓이고 핏물이 마르지 않았다.

다부동 전투에서 희생된 우리쪽 병사만 1만명이 넘는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학도병과 군복도 없이 포탄과 부상병을 지게로 날랐던 칠곡군 주민의 희생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들의 희생으로 백척간두에 처했던 나라의 운명을 건질 수 있었으니 다부동 전투의 기억을 누가 잊을 수 잊겠는가.

어제는 6·25전쟁 발발 74주년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한 가운데 국제정세마저도 날로 험악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 고장에서 벌어진 구국의 전투, 다부동 전투의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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