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기의 화약고라 불리던 발칸반도다. 그만큼 민족과 종교와 역사가 뒤엉킨 땅이란 뜻이다. 그 중심에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있다. 특히 세르비아의 성지 코소보에 이민족이 나라를 세운다니? 세르비아로서는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중세의 걸출한 영웅이자, 세르비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 스테판 듀산, 그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는 물론 코소보까지 넓은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1331년에는 발칸을 넘어 유럽 전역의 강자로 거듭났다. 후세 역사가들은 스테판 듀산 앞에 ‘강자(强者)’라는 별칭을 붙여 이미지를 상승시켰다.
듀산의 공포에 동로마 비잔티움제국은 호시탐탐 발칸반도를 노리고 있던 오스만제국에 SOS를 타전하고 말았다. 이 잘못된 판단이 세르비아 네만야 왕조의 멸망과 함께 천년을 이어오던 비잔티움제국의 종말을 앞당기게 된다. 오스만으로선 기다렸던 바였다.
1386년에 불가리아를 함락한 이슬람은 1389년 6월 28일, 오늘날 세르비아 민족 성지인 ‘검은 새의 들녘’으로 불리는 코소보 대평원에서 세르비아 군대와 마주했다. 세르비아 수호신이자 성자 성 비투스의 날,(1914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그날도 성 비투스의 날이었다) 운명을 건 결전이 시작된다.
세르비아 군을 중심으로 자칭 십자연합군 10만, 오스만 6만이 진을 쳤다. 세르비아 농민들까지 동원된, 그야말로 세르비아인의 신화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 시작된 것이다.
세르비아에서는 라자르가 선두에서 지휘를 맡았다. 오스만은 중앙군에 무라트 1세가 지휘봉을 휘둘렀고, 오른쪽에는 큰아들이자 ‘번개왕’으로 등극하는 바예지드가, 왼쪽 날개는 작은아들 야쿠브가 지휘했다.
라자르 신호와 함께 세르비아군 선공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전투는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며 꼬박 하루를 넘기며 이어졌다. 세르비아 역사상 이토록 치열하게 전개된 전투는 일찍이 없었다. 점차 세르비아 왼쪽 진영이 무너지면서 전세가 이슬람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세르비아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세르비아군 최후의 한 명까지 영웅적인 죽음을 맞았고 오스만튀르크제국이 승리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오스만 무라트 1세도 목숨을 잃어야 했다.
후세에 와서 이 전투가 세르비아 민족주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세르비아인 가슴에 화석처럼 각인된다. 누구의 도움 없이 발칸반도에서 이슬람 제국에 마지막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항전했던 역사적 사실은 전무후무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르비아의 영원한 영웅 밀로슈 오빌리치의 신화가 탄생되면서 세르비아인 가슴을 덥혔다. 세르비아 선봉대장 오빌리치는 짐짓 거짓 항복을 해 무라트 1세의 환심을 산다. 그리고 품속에 무기를 숨기고 들어가 무라트 1세의 가슴에 칼을 꽂아 넣는데 성공하고, 그 역시 오스만 군사들에 의해 장렬하게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진실은 무라트 1세가 전장을 돌아보다 전사자 속에 누워있던 오빌리치가 일어나 심장에 칼을 꽂았다는 것이 팩트다.
아들 바예지드는 군사를 물리기는커녕 슬픔을 뒤로 한 채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고 전술을 가다듬었다. 결국 농민군까지 끌어모아 항전했던 라자르는 바예지드에게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만다. 바예지드는 라자르의 목을 자르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리고 1453년 메메트 2세에 의해 비잔티움제국마저 멸망하면서 발칸반도는 무려 400년 동안 오스만트루크제국 압제 아래 들어가야 했다. ‘검은 새의 들녘-코소보 전투’는 ‘코소보의 처녀’라는 또 하나의 사연을 탄생시켰다.
“오 불쌍한 이여, 악마가 그대의 운명이구려! 불쌍한 당신이 푸른 소나무를 잡는다면 그 마저 시들어 버릴 것이니!”
세르비아 사람들은 오스만제국의 압제 아래서 이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가슴에는 의기가 충만하고, 민족혼이 가슴을 쿵쿵 쳤다. 그렇게 코소보는 세르비아인 민족의 성지로 굳어지고 있었다.
훗날 세르비아 희대의 살인마 밀로셰비치가 길들인 민간 무장단체 ‘아르칸의 호랑이’에 의해 코소보는 20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터로 변했다. 자신들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민족의 성지 ‘검은새의 들녘’에 알바니아 무슬림들이 몰려와 살면서 나라를 세우겠다니? 어쩌면 세르비아로서는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사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6세기 이전 로마제국의 발칸반도 진출에 끝까지 애를 먹였던 민족, 마지막까지 로마제국과 발칸반도에서 전쟁을 이어갔던 민족이 알바니아 조상 격인 일리리안이었다.
돌고 도는 것이 역사다. 어느 한 부분을 뚝 잘라 내 것이라 주장한다면, 폭력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호령했던 땅이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면 중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