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색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낯익은 중년 사내 하나가 카메라에 잡혔다. 어린아이건 나이를 먹은 사람이건 독서는 비판받거나 힐난 받을 행위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칭찬의 대상이 될 일이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서울의 한 도서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편안한 복장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의 제목이 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보도하는 기사는 나쁠 것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궜다. 한 전 위원장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마구잡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입에 담기 낯 뜨거운 욕설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직장 잃고 집에서 쫓겨난 노숙자의 폼 잡기 같다”란 반응엔 할 말을 잃게 된다. 책읽기는 실직하고 아내에게 구박받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인가?
2차대전 시기 연합군의 최고위급 장교이자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는 이런 말을 남겼다.
“책을 태우는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말라. 오류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은폐함으로써 오류 자체를 은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도서관에서 모든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짤막한 문장엔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세계와 인간의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한 가장 유효한 방법은 ‘책읽기’란 뜻이 담겼다.
‘책은 사람이 만들지만, 그 사람을 만든 건 책’이라는 이야기에 고개 끄덕일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왜냐? 이미 인류의 역사를 통해 증명됐으니까. 그러므로 한동훈의 책읽기에는 죄가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사람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도 마찬가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