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다. 대구 중구는 순종이 1909년 1월 남쪽 순행 중 대구를 다녀간 일을 재현해 지난 2017년 달성공원 정문 앞 일대를 테마거리로 만들었다.
어가길에 담긴 치욕을 ‘다크 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역사교육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낙후된 골목 개발과 원 도심 재생 및 관광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길이 2.1㎞의 어가길은 국비 35억원 등 70억원이 들어갔다. 동상 건립과 함께 차선을 줄여 교통섬 등이 들어섰다.
사업은 구상단계부터 친일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일제가 반일 감정 무마를 위해 순종을 대구와 부산 등으로 끌고 다닌 치욕스러운 역사라는 이유였다.
어가길과 동상 조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대례복 차림의 순종 동상이 군복을 입고 다닌 당시 모습을 왜곡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대를 무릅쓰고 건립을 강행했다.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어가길 조성 이후 달성공원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교통 혼잡 등 민원이 빗발쳤다. 보행과 안전사고 위험이 커졌다. 결국 중구는 ‘순종황제 어가 길 조형물’ 철거를 결정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순종의 후손들은 “황제를 욕되게 하지마라”며 동상 기증을 요청했다. 의미 있는 장소로 이전하자고 했다.
역사 왜곡과 친일 논란까지 애써 무시하고 다크 투어리즘으로 포장한 채 세워진 대구 ‘순종황제 동상’은 고작 7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조선의 마지막을 지켜봐야했던 것만큼 서글픈 운명이다.
동상 건립비와 원상 복구비로 11억원이 들어간다. 지역사회와 논의조차 제대로 않고 추진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세금낭비와 행정력만 소모했다. 10년 앞도 못 내다본 우리 행정의 현주소다.
/홍석봉(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