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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너머

등록일 2023-10-24 18:41 게재일 2023-10-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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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타인에 대한 개념을 축소시킨다. /Pixabay

좀비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는 의외로 사람에 대한 드라마다. 물론 좀비가 주인공일 수는 없으니(그들은 지성이 없고, 따라서 말을 할 수도 없다) 인간이 주인공인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 여타의 좀비물과 달리 ‘워킹 데드’는 시즌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처음으로 이야기가 달라지는 건 ‘가버너’라는 적대적 인물이 등장할 때이다. 좀비들로부터 살아남고자 사투를 벌이고, 잃어버린 생존자를 수색하고, 궁극적으로는 안전지대를 찾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1~2시즌과는 달리, 3~4시즌은 서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에피소드가 중심에 놓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유형은 시즌 4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종착역의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기차의 종착역에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생존자를 포섭하기 위해 “모든 이를 위한 안식처. 모든 이를 위한 공동체”라는 문구와 함께 자신들의 위치를 새긴 홍보물을 도시 곳곳에 부착하고 다닌다. ‘가버너’와의 싸움 이후로 살 곳을 잃어버린 주인공 일행은 홍보물에 새겨진 경로를 따라 종착역을 향해가지만, 그들이 도착한 종착역이라는 곳은 사람을 위한 안전지대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먹는 식인종들의 캠프였다.

작중 짤막하게 스쳐지나가듯 설명되지만, 쉽게 말해 이들은 강도들에 의해 죽을 뻔한 사람들이었고, 그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이다. 타인의 생존물자를 약탈하고,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생명마저 빼앗는 강도들에게서 살아남으려 싸우던 사람들이 이제는 타인의 생명을 잡아먹는 식인종이 되어버렸다는 설정은 ‘워킹 데드’ 세계관의 잔혹함을 보여주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라는 니체의 격언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인지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좀비들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애쓰던 주인공 일행은 이들과 조우한 이후 완전히 변해버린다. 더는 타인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이후엔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을 생각마저 하는 주인공 일행의 모습은 좀비들이 창궐한 세계에 맞는 현실적인 모습이기에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 이제 그들에게는 ‘생존’ 외에 어떠한 가치조차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즌 종착역 주민들이 등장하는 시즌 5~6의 이야기는 유독 비참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생존에 매몰되어 서로 반목하고 타인을 위협하고, 때로는 자신의 일행을 통솔하기 위해 앞선 적대적 인물의 면모를 고스란히 반복하며 전체주의적인 태도마저 보여주는 주인공의 태도는 이제 더 이상 이 세계가 좀비의 창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시즌이 지속됨에 따라 이들은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낸다. 어디에도 그들을 위한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거듭 인간과 사람의 사이를 오가며 갈등하고 고뇌하며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고민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생존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 사람은 타인에 대한 개념을 축소시킨다. 타인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제거해야 하는 경쟁자일 뿐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람을 오직 경쟁자로 인식한다는 건 그 사회가 생존 외에 어떠한 가치도 더는 존속할 수 없게 된 위험 상황임을 의미한다. 생존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세계에서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다.

동물의 한 종으로서의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경쟁 상태. 그건 ‘워킹 데드’의 한 에피소드가 그러했듯 문명이 아닌 야만의 세계에 불과하다. 한 사회가 어떤 수준에 위치하는가는 이처럼 타인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증상적으로 나타난다. ‘워킹 데드’라는 드라마가 현실에서 더욱 씁쓸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좀비가 없는 세계임에도 오직 타인을 경쟁의 대상으로밖에는 느끼지 않는 현실이 어쩌면 좀비들로 가득한 세계보다 더 무서운 세계인 것 같아서. 그런 세계에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증오하는 인간들을 거듭 닮아간다. 살기 위해, 인간을 잡아먹는 좀비를 닮아가듯 식인을 하게 된 인간들처럼. 지금 우리는 어떤 형상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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