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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타블랙, 찰나의 푸른빛

등록일 2023-10-17 18:36 게재일 2023-10-1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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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쉬카푸어, ‘BLACK2023’·서울국제갤러리. /김유태 제공

인도 예술가인 애니쉬 카푸어의 ‘BLACK’은 검은색 원형 조각품이다.

카푸어는 반타블랙(VANTA Black)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반타블랙은 영국의 한 기업이 나노기술을 통해 개발한 새로운 색상 소재인데, 빛의 99.965퍼센트를 흡수할 수 있는 물질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어둠’이라 할 만한 순도 높은 암흑으로 만들어진 카푸어의 작품은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기묘한 매력을 지녔다.

작품 앞에 선 감상자는 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실제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처럼, ‘BLACK’은 빛 뿐만 아니라 사람의 눈빛마저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절대적이면서 매혹적인 검은색이다.

그런데 이 완벽에 가까운 검은색도 완벽은 아니어서, 다르게 파악될 0.035퍼센트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얼마 전 매일경제신문 문학담당기자이기도 한 김유태 시인과 술 마시는데, 그가 대뜸 서울국제갤러리 ‘애니쉬 카푸어展’에 다녀왔다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BLACK’을 내게 보여줬다.

“이 완벽한 검은색이 옆에서는 묘하게 청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몇 걸음 떨어져서 보면 회색빛으로 보이기도 하더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친구의 흥분한 모습을 즐거워 하면서, 나는 스마트폰 속 카푸어의 ‘BLACK’과 김 시인이 입은 올블랙 셔츠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검은색은 오직 어둠일까?‘, ’검은색은 끝일까?’, ‘검은색은 죽음일까?’

얼마 전 전남 구례 섬진강으로 쏘가리 낚시 갔다가 늦은 밤까지 강변에 있었다. 원래도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물가인데 그날따라 구름이 달을 가려 그야말로 칠흑이었다. 어둠 속에서 선명해지는 것은 물소리와 몸을 뒤채는 강의 살내음 뿐. 그런데 아주 잠깐 구름의 두께가 야위는 순간 강 전체가 은은한 푸른빛이 되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때 우연처럼, 쏘가리의 입질을 받았다. 그 찰나의 푸른빛이야말로 김유태 시인이 ‘애니쉬 카푸어展’에 전시된 ‘BLACK’에서 봤다던 어둠 속의 빛이 아닐까?

세상에 완벽한 검은색은 없다. 2019년 MIT 연구진이 개발한 신물질은 빛 흡수율 99.995퍼센트로 반타블랙의 효율을 압도적 갱신했는데, 그 물질 역시 0.005퍼센트 빛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세상은 점점 더 짙은 어둠이 되어 가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선 수천의 사람들이 죽어 가지만, 학폭 피해자인 20대 여성이 스스로 삶을 버렸지만, 주윤발은 전 재산 9600억 원을 기부하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휘영 김상우 두 청년은 장기기증으로 각각 3명, 5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

그렇기에 암흑 같은 절망의 심연 속에도 빛이 자라난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검은색은 어둠이 아니다. 검은색은 끝이 아니다. 태초의 빛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광채가 검은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검은빛인 어둠 위에 다른 빛이 입혀질 때 색(色)과 상(象)이 태어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러므로 검은색은 심연의 입구이자 출구다. 빛은 검은색에 삼켜졌다가도, 다시 검은빛에서부터 무수한 빛이 파생되고, 압도적인 덧칠색이지만 검은색은 모든 색을 돋우는 바탕색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약자, 소수자, 아브젝트적 존재들은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안에 있다. 때로 빛은 너무 환해 물상을 분산시키지만, 어둠은 상과 상, 그림자와 그림자를 밀착시킨다. 순백의 빛이 설맹(雪盲)을 만드는 데 비해 암흑처럼 보여도 어둠은 늘 암중모색(暗中摸索)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렇게 어둠과 어둠이 서로 끌어안을 때, 새벽처럼 푸르스름한 빛이 부화할 때, 그 빛이야말로 빛보다 빛나는 어둠일 것이다. 타자와 연대하는 것이, 사람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일지라도 우리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빛보다 빛나는 어둠을 온몸으로 밀면서 나아가야 하리라.

지금 어둡다면 그 암흑은 곧 나타날 찬란한 빛의 암시일 것이다. 상투적인 문장이지만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던 말을 믿는다.

일찍이 검은색에 관해 오래토록 탐구한 한 시인을 빌리자면 “검은빛은 죽음이 아니다, 비애가 아니다 검은빛은 환하다”(송재학, ‘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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