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일상은 단출하다. 오전 9시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 대부분은 소설을 쓴다. 수업 준비를 하거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도 한다. 점심은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해결, 식사를 마치면 강아지와 함께 작업실 인근 공원을 산책한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저녁을 만들고 영화나 만화책을 보며 빈둥거린다.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하고 다음 날 먹을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는 이런 일상을 간절히 원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창작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소설 마감을 위해 새벽 5시에 책상 앞에 앉았고 개인적인 작업보다 그쪽에서 원하는 일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은 영화와 책은 매일같이 쏟아졌으나 그것을 누린다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호교환, 그러니까 저쪽에선 월급을 주고 이쪽에선 내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행위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했다. 주말에 늦잠을 자면 죄책감을 느꼈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면서 생각했다. 글만 쓰고 싶어. 그럼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아.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완벽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삶의 모양이 이제야 완성되었다며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누벼야 옳았다. 안온한 공간에서 오롯이 글쓰기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더없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매달 통장에 일정하게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다. 모아둔 돈을 차곡차곡 까먹는 날이 늘어난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모든 직장인이 부르짖는 ‘자유’는 결국 ‘경제적 자유’임을. 통장에 찍힌 숫자에 따라 마음의 크기가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한다는 것을.
오랜만의 외식비가 과하지 않았나 안절부절못한다. 온라인 쇼핑몰의 결제 버튼 하나 누르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지기도 한다. 특히 친구들을 만나면 보풀이 일어난 속주머니만 만지작거리는 사람의 마음이 된다. 누구는 강남에 몇 평짜리 집을 샀고 누구는 보통의 연봉을 몇 주간의 여행에 썼다는 소식.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는 부와 명예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한 것만 같다. 내 삶의 규모가 남들보다 터무니없이 작다는 게 실감 나는 날에는 누구보다 가난한 마음으로 귀가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할머니는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나의 부모는 한국전쟁 이후의 지리멸렬한 가난을 겪었다. 이러한 과거를 딛고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 또한 그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청년들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실제적 가난을 견디는 무수한 이들도 있으나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다. 타인의 일상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세상이다.
고등학교 동창이 어느 동네 아파트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아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삶이 화려할수록 나 자신의 초라한 삶이 도드라져 보인다. 더 잘 살고 싶어서 힘차게 발을 굴러도 늘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 같다.
그렇지만 풍요와 빈곤의 뜻을 자본의 논리에서 찾는 순간 많은 것이 무너지게 된다. ‘잘 산다’라는 개념의 동의어를 ‘돈이 많다’로 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많은 물질을 소유한 사람도 마음이 가난할 수 있고, 손에 쥔 것이 없더라도 그 안에서의 풍요를 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되묻는 일이다. 무엇을 추구하고 또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
작업실에 앉아 있노라면 창밖으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팔월의 빛과 비를 맞고 자란 나무는 높고 푸르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 방사형으로 퍼지는 것을 목격한다. 세상의 그 무엇도 낚지 않는 그물 같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름, 내 옆을 지키는 작가들의 문장과 부모님이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만든 도시락 반찬, 반려견의 고요한 낮잠과 내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가는 낯선 이야기. 이 모든 게 나를 풍요롭게 하는 사소하고도 중요한 일상이다. 불투명한 내일에 관한 불안도 끌어안아야 한다. 풍요도 빈곤도 내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