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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기념史

등록일 2023-08-22 16:54 게재일 2023-08-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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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Pixabay

광복.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빛(光)을 되찾다’의 의미에로 해석하곤 하는데, 실제 ‘광복(光復)’에서의 ‘광’은 빛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영예롭게’라는 뜻의 부사이다. ‘광복’이라는 말은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예롭게 되찾다’라는 의미. 여기에는 2017년 김영민 교수가 칼럼을 통해 지목한 바와 같이 무엇을 회복하는가를 알려주는 목적어가 빠져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목적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자결권, 자신에 대해 결정한 권리이다.

우리가 지닌 정체성과 자결권이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언제든 타자에 의해 위협될 수 있는 것, 그것이 정체성과 자결권이다. 모든 인간에게 당연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정의를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20세기의 관습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의 여러 국가와 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결권을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헌데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국민학교 시절만 해도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단군의 자식이라는 단일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배워왔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한 정체성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적용할 수 있을까. 2010년을 전후하여 사학계에서 제기된 단일민족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면, 한반도는 상고시대 이래로 무수한 이방인의 방문을 받아왔다. 여기에는 ‘왜’로 대표되는 해양세력에서부터 북방 유목민족,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심지어는 아랍인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인종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가 단일 민족이라는 것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국가 성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된 기획일 뿐, 실제 현실과는 다르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단일 민족과 같은 허구의 환상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란 타자에 의한 위협 속에서 스스로의 결정권을 지켜내 왔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말이다. 그러니 ‘광복’이란 단지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으로부터 국가적 역량의 문제와 전 세계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다는 사실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에 뿌리 깊게 새겨진 상처로서 부각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난 8월 15일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다소 의아한 충격을 받았다.

이날 대통령은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임을 강조하며, “공산주의 및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언급을 반복하며, 광복절의 의의와는 다소 거리가 먼 연설을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광복절이라는 것이 외부세력으로부터 국가의 정체성과 자결권을 되찾았다는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자면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이 전혀 이해 못할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광복이라는 단어에 있어 그 대상이 일본 제국이었으며, 그리고 그러한 과정으로부터 하나의 국가가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는 역사적 비극을 상기하자면, 이러한 대통령의 연설은 지나친 감이 있다. 대통령으로서 우리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광복하였는가에 대한 고려가 지나치게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더욱 의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러한 대통령의 이어진 연사 때문이다. 여기에서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공산주의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 등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확한 대상 없이 이루어진 이와 같은 발언은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진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위해 활동해온 사람들을 순식간에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단지 반국가세력의 위장에 불과한 것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무엇을 통해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진보라는 가치가 사라진 자유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면 광복절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결권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말은 국민을 두 편으로 갈라 세우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자결권과 정체성의 의의에 대해 강조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반국가 세력을 운운하고,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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