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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의 숲에 들어섰으니 詩나무 돼 걸어 나와야지”

등록일 2023-07-17 18:19 게재일 2023-07-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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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이원만 아트플랫폼 한터울 대표
이원만 아트플랫폼 한터울 대표

대학 시절 풍물에 빠져 지낸 지인이 필자가 포항에 있다는 말을 듣고 했던 첫마디가 ‘원만 사부가 사는 곳’이었다. 한강 이남에서 꽹과리를 가장 잘 노는 상쇠이자, 앞서 이끌기보다는 스며들어 함께 가는 보기 드문 리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원만 사부가 포항에 풍물을 뿌리내린 ‘한터울’의 이원만 대표였다.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 그는 만날 때마다 세상을 넓혀가는 사람이었다. 꽹과리 연주자로 시작해 국악으로 다양한 창작 공연을 선보이더니 직접 기획하고 감독한 국악창작뮤지컬 ‘강치전’은 전국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대표의 시가 실린 계간지가 우편으로 배달됐다. 시를 읽고 난 후 그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꽹과리 연주자로 시작해 국악창작뮤지컬 제작·문예교육콘텐츠 개발 보급· 시인 등단까지

제 詩가 계간지에 실린다고 알았는데 출판사서 신인상 추천 해줘서 하루아침에 시인이 됐어

친해진 자연에 슬쩍 말을 걸어 보다가 詩가 나와… 뭔가 떠오르면 메모하고 그것이 詩가 되지

쇠를 칠 때 물 흐르는 소리 내라고 배웠어… 기가 막혔지만 하니 됐어 그때 감수성이 도움 돼

가족 뮤지컬 ‘강치전’ 이어 ‘고래 낙하’ 담은 ‘웨일 폴’ 준비 중… 오는 11월 쯤 무대에 오를 예정

 

-등단을 축하드린다. 시를 쓰는 풍물꾼이 풍물 하는 시인이 되었다.

△시 쓰면 시인이지, 싶어서 그냥 작품만 쌓아두고 있었는데 얼마 전 친구가 사무실에 와서 쌓인 책들을 쓱 둘러보더니 써놓은 거 보여달라더라. 그래서 몇 편 보냈더니 허락도 없이 투고해 버린 거다. 시가 계간지에 실린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출판사 측에서 신인상 추천까지 해줘서 하루아침에 시인이 되었다.

 

-언제부터 시를 쓴 것인가.

△어릴 적부터 썼고 고교 문예 동아리에서 시에 푹 빠졌다. 안도현, 이정하, 서정윤 시인 등을 배출한 대구 대건고의 ‘태동기’이다. 당시 지도 교사였던 도광의 시인을 얼마 전 찾아뵈었는데 예순이 되어 무슨 등단이냐고, 뭘 그리 오래 참았냐고 그러시더라. 그러면서 좋은 작품은 쓰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쓰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하셨다. 그 말이 가슴속에 깊이 박혔다.

 

-시 창작 방향을 ‘탄소 포집용 시’라고 밝힌 이유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삶의 생태적 전환’은 지구에 붙어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됐다. 코로나 전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고민을 하다 제주도의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의 ‘그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나무가 되어서 나왔다.’라는 표현을 접했다. 한 문장이지만 찌릿했다. 시인은 나무와 풀과 동물의 말을 인간 언어로 동시통역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나무와 풀들의 말을 전하는 시를 쓰고 읽게 해서 기후변화의 감수성을 키워주면 ‘생태적 슬픔’을 느끼고 행동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탄소를 포집하는 시라고 얘기했다.

 

-등단작인 ‘산책 간다’에서 산책을 ‘살아있는 책을 보러 간다는 말’로 표현했다. 산책하면서 시적 영감을 받는 편인가.

△영감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늘 관심을 가지고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말문이 서로 트이는 것이다. 양동 마을의 둘레길, 오어지 둘레길, 그린웨이 등을 다니며 친해진 자연에 슬쩍 말을 걸어 보다가 시가 나온다. 뭔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를 하고 그것이 시가 된다. 호기심이 많아서 질문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드는 편이다. 공부는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런 인식의 변화가 나를 행복하게 하고 조금 나은 인간이 되게 하니 멈출 수가 없다. 하나의 주제에 빠지면 책장 한 칸을 채운다. 언젠가 나무에 관한 공부를 하는데 ‘나무는 존재 자체가 선물이다.’, ‘자신의 가지를 자른 사람에게도 그늘을 내준다.’는 말들이 시처럼 느껴졌다. 나무에 대한 시작(詩作)은 그렇게 시작(始作)됐다.

 

-‘참새 무덤 이장하기’라는 시도 인상적이다.

△오래 전 사물놀이 가르치러 간 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아이들이 손으로 물을 떠서 참새에게 뿌리고 있더라. 발견했을 때는 움직임이 있었던 모양인데 내가 볼 때는 죽은 상태였다. 참새를 살리려고 애쓰는 아이들을 설득해서 은행나무 아래 묻었다. 그러면서 은행나무에 참새를 저축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미심쩍어하는 아이들이 혹시 실망할까 봐 참새 무덤을 옆으로 옮긴 얘기다. 그걸 그대로 받아 적었으니, 아이들이 준 시이다.

 

-아이들이 준 시라고 하지만 눈높이가 맞는 시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이다.

△시 쓰기의 시작은 동시였다. 동시와 시는 대상과 언어가 다를 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사물놀이를 가르치러 다니면서 만난 아이들에게서 얻은 시로 동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이 한국 동요 100주년이라고 한다. 동시에 곡을 붙여 북 콘서트도 해볼 계획이다.

 

-시인이기 이전에 꽹과리를 치는 상쇠였다. 꽹과리의 시의 공통점이 있다면.

△만만하지 않다. 심금을 울린다. 늘 ‘만족과 부족’ 사이를 걷게 만든다. 그 정도가 아닐까. 꽹과리를 치면서 ‘큰 기교는 기교가 없다’라는 전통음악 이론을 접하였다. 시에 접목하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고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덕목으로 연결된다.

 

-꽹과리는 시를 쓰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

△쇠를 칠 때 물 흐르는 소리를 내라고 배웠다. 딱딱한 금속에서 부드러운 물소리라니 처음에는 기가 막히더라. 그런데 해보니까 그게 또 됐다. 진동으로 떨리는 쇠판으로 채가 들락날락하면서 희한하게 조화를 이뤘다. 그 경지를 보면 그때부터 말 그대로 환장하게 된다.

꽹과리 가락의 맛을 내는 기운을 얻기 위해 일부러 찾아다니던 풍경이 있다. 태풍이 불면 바다의 들끓는 기운을 보러 갔다. 바람 많은 날 대나무밭은 일렁이는 불꽃 같다. 비학산에서의 일출도 잊을 수 없다. 막걸리가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 커피를 마시면서 해 뜨기를 기다리는데 들판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해가 보였다. 그 후로 ‘칠채 장단(일곱 번 친다고 해서 이름 붙은 홀수 박. 끝날 듯 멈추지 않는 역동성이 특징)’을 칠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린다. 풍물 잘하는 친구가 내가 칠채 장단을 치면 ‘맛있다’고 하더라. 풍물의 어떤 경지에 이룬 연주자들을 보면 소리의 기운이 덩어리로 천장에 모인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미쳐야 미친다고 하지 않나. 시는 아직 꽹과리만큼 몰입하지 못했지만, 꽹과리를 친 것이 감수성 훈련에 도움이 됐다.

 

-35년 동안 몸담은 한터울이 ‘맏뫼골 놀이마당’에서 ‘아트플랫폼’으로 바뀐 것은 어떤 변화의 반영인가.

△사물놀이와 풍물놀이 단체에서 공연 창작과 기획, 교육 콘텐츠를 연구·개발·보급하는 단체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지역 예술가들이 단순한 기능 전수가 아닌 자신의 언어를 발산하는 예술가로 자각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포항에 뿌리내리고 활동할 수 있는 일자리도 필요했다. 4년 전에 사회적 기업을 만든 것은 그런 고민의 결과이다.

 

-지금까지 개발한 교육 콘텐츠를 소개한다면.

△흥부전의 제비노정기를 조류 보호를 위한 창극으로 재창조한 ‘지지배배(知知拜拜)’는 아이들과 새로운 버전의 판소리 한 대목을 나누며 생태를 고민하는 교육 콘텐츠이다. 강치전을 바탕으로 만든 교육 프로그램 ‘바다가 그랬어’는 올해만 30곳에서 운영한 효자 프로그램이다. 토속민요극 ‘남의 눈에 꽃이 되고’처럼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도 있다.

 

-한터울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국악 가족뮤지컬 ‘강치전’이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담은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포항의 예술가들이 오디션을 봐서 작품에 참여하고 그 작품이 전국에 초청받아 공연하러 다니고 있다. 한 공무원이 예술은 돈을 쓰는 분야인지 알았는데 벌어오기도 하구나, 말하더라. 코로나로 어려움은 있었지만 꾸준하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1회 공연이 아닌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으로 활동폭을 넓히면서 다듬어 나갈 계획이다.

 

-지금 구상하는 작품이 있나.

△독도 강치 다음 타자로 고래가 등판을 준비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나무 천 그루의 탄소를 포집하는 고래는 죽어서도 바다를 지킨다. 해양 깊숙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수많은 바다 생물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해양생물 보호종 고래는 죽어서 항구에 들어오면 매립장에 묻는다. 그 장면을 사진으로 보면서 울컥했다. 쓰레기처럼 매립할 것이 아니라 먼바다로 돌려보내 주어야 한다. 자기 몸을 나눠 바다가 풍성해지는 ‘고래 낙하’를 담은 ‘WHALEFALL(웨일 폴)’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는 대본을 직접 썼고 여러 번 수정을 거쳐 탈고한 지 얼마 안 됐다. 오는 11월쯤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강치전’이나 ‘WHALEFALL’ 같은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 작품을 전국으로 유통하는 기획사도 만들고 싶고 전용 극장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는 대본 작가의 능력도 제대로 갖추고 싶다. 주변에서 더러 나이도 있는데 일을 조금씩 내려놓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한다. 이제 겨우 시인이 되었고 그걸 써야 겨우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어떻게 포기하겠나. 문학이라는 숲으로 들어섰으니, 시라는 나무가 되어서 걸어 나와 봐야지, 안 그런가?

환경창극 ‘지지배배’ 교육콘텐츠 연구 모임.
환경창극 ‘지지배배’ 교육콘텐츠 연구 모임.

이원만 대표는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포항에서 30여 년 꽹과리를 치며 살았다. 포항의 젊은 예술가들과 사회적 기업 (주)아트플랫폼 한터울에서 기후 혼란과 공생하는 인간, 생태적 감수성 등을 담은 뮤지컬을 제작하고 문화예술교육콘텐츠를 개발해 보급한다. 5년 차를 맞는 ‘강치전’은 2020년~2023년 4년 연속 국공립예술단체 우수공연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계간 문학나무 2023년 여름호 시 부문 신인상으로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심사를 맡은 박덕규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을 했다. 오래 연마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타성에 젖지 않았으며 ‘새로우려고 애쓴 흔적’조차 내지 않으려는 긴장이 있다.

 

/배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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