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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멍’에 빠지면 글감이 화수분처럼 솟아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3-05-16 20:19 게재일 2023-05-1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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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수필집 ‘木 -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펴낸 이순혜 작가<br/><br/> 첫 수필집 ‘우편물은 현대슈퍼로’ 이후 4년만   <br/> 23가지 다양한 색깔 묻어나는 이야기로 채워<br/><br/>“마음이 나무를 향할 때마다 가슴이 ‘쿵쾅’<br/>오랜 기간 품어온 갖가지 사연들 꺼내 놓아<br/>  모든 세대 아우르는 ‘치유의 작가’ 되고파”
이순혜 작가
이순혜 작가

마음이 간다는 것은 관심이다. 관심이 생기면 마음이 그쪽으로 간다. 그 마음은 내 이웃일 수 있고 반려동물, 반려식물일 수 있다. 그중에 나무에 마음을 빼앗긴 작가가 있다. 최근 수필집‘木 -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정은출판)를 펴낸 이순혜 작가다. ‘木’은 23편의 나무 이야기로 꾸며졌다. 수록된 나무들은 우리 가까이 있어 쉬이 마음을 낼 만하다. 이 한 권의 책을 안고 나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木’을 평론한 수필가이며 문학평론가인 김이랑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무를 그냥 바라보면 ‘木’이라는 상형문자일 뿐이다. 하지만 눈을 통해 들어온 나무를 마음의 자연에 심으면 상형문자가 아니다. 어느 봄날의 추억이 열리고 어느 가을날의 노란 사색이 되고 한겨울의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서정이 된다. 이순혜 작가의 ‘木’이 그러하다. 작가가 펼치는 서정을 따라가면 내면의 토양에 나무 몇 그루가 의미 있게 이식될 것이다. 지난 15일 이 작가를 만나 ‘木 -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수필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첫 수필집 이후 4년 만에 ‘木’이야기를 출판한 소회를 듣고 싶다.

△등단 후 13년 만에 첫 수필집 ‘우편물은 현대슈퍼로’(2019)를 세상에 내보냈다. 첫 번째 수필집에는 글공부를 시작하고 쓴 글부터 각종 공모전 수상작이 수록되어 있다. 수필 문학이 그렇듯 삶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희로애락이 총망라되었다. 글쓰기는 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 찾아다닌 곳이 나무이다. 나무 아래 머무는 게 좋아 ‘나무멍’을 자주 했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언젠가부터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수필집 ‘木’은 그렇게 태어났다.

 

-나무를 찾아가는 특별한 기준이 있다면.

△특별한 기준은 없다. 다만 마음이 나무를 향하고 있을 때 발견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책을 읽다가 문장 안에서 오래된 나무를 발견하면 벌써 가슴이 쿵쾅댄다. 오랫동안 나무가 목도했을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러면 무작정 나무를 보러 간다. 거기에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남녀의 애달픈 사랑을 품은 전설, 나무 아래서 민초들의 독립의 함성을 지켜본 나무, 몇백 년 된 나무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저의 추억은 덤이다. 사과 서리했던 사과나무, 아까시 따고 놀았던 유년 시절, 고향집을 끝까지 지킨 능소화 등 나무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솟아났다.

-수필집에 수록된 제목들이 궁금하다.

△23편의 나무의 색깔이 다르다. 예를 들어 작가의 서정을 품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나무를 보자. ‘그날은 달도 비밀을 지켰어’라는 제목은 사과 서리를 했던 날에 대한 이야기다. 철없던 시절 폭풍 같은 사건을 겪은 우리를 지켜본 달님을 생각하며 제목을 정했다. 또 ‘기웃기웃, 누구를 기다리시는가’라는 제목이다. 친정집 담벼락에 있는 능소화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담긴 이야기다. 작가의 체험이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책장을 넘기다 우연히 발견한 등나무도 있다.‘어우렁더우렁 저 등나무’이다. 현곡면 오류리에 있는 등나무를 보러 갔다가 팽나무와 등나무의 전설을 꺼내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몇백 년을 그 자리를 지킨 나무가 많다.‘왕릉을 지켜보는 왕버들 나무’는 진평왕릉 주변에 있다.‘영웅을 기억하는 은행나무’는 곽재우 생가를 찾았다가 은행나무에 마음이 자꾸 가 은행나무 중심으로 곽재우 의병을 기억하고 싶었다. 나무 이야기의 제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나무가 있다면.

△여섯 번째 수록한 때죽나무다. 흥해읍 도음산에 있어 마음을 내면 쉽게 만날 수 있다. 때죽나무는 꽃이 땅을 바라보고 있어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게 된다. 때죽나무 이름의 유래, 특별한 성질을 알아가며 조상들의 지혜도 엿볼 수 있음은 덤이다. 이 한 권의 책을 들고 때죽나무 아래 머물러 보시라.

 

-수필집을 읽고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랐다. 많은 사람이 책을 들면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고 한다. 몰입도가 있어 한 편을 읽으면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 손을 뗄 수가 없다고. 수필이 주는 재미와 공감, 그리고 사유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생각을 어둑하고 깊은 곳까지 내려 원고를 쓰고 다듬고 뜸을 들이고 또 다듬으며 썼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세대를 아우르는 글을 쓰고 싶다. 아이들은 책을 펼치며 꿈을 꾸고 책을 덮고도 무지개색으로 채색할 수 있는. 어른에게는 ‘라떼는 그랬지’라며 환한 웃음을 짓는. 어쩌다 눈물 한 바가지 쏟으며 독자의 치유를 도울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작가의 몫은 치열하게 글을 쓰고 독자는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게 말이다. 가만 보면 작가는 참 고독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길을 뚜벅뚜벅 가겠다. 우리 시대는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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