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여름 사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폭식을 끝낸 것처럼 공허함이 자리한다. 소화시키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인데, 가슴팍을 두드려보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아 몸을 움직여 보아도 목까지 차오른 더부룩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요즘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집에서 쉬고 있는 와중에도 해치워야 할 집안일이 차례대로 떠올라 괴롭다. 이번 주말엔 겨울 내내 가장 많이 붙어 있었던 전기장판을 정리해야 하고, 겨울 이불도 빨래해서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야 한다. 7월 말엔 4년 간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 그간 창고 속에 쌓아 둔 쓸모를 잃은 짐들은 버리거나 나누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하는 번거로운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와중에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신을 차리면 달력이 넘어가고 있고 눈을 감았다 뜨면 낮과 밤이 바뀌어 있다. 이 길이 출근하는 길인지 퇴근하는 길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매일매일 꿈결 같은 몽롱한 삶을 살고 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대체로 6시. 샤워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잠을 잔다. 다시금 눈을 뜨면 오후 9시. 식사를 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빵 한 조각이나 요거트를 대충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엇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재미와 자극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오늘도 어김없이 무료함과 피로를 소화시키고 있는데 재채기가 나와 쉼을 방해했다. 요즘 미세먼지가 심한 탓인가 싶어 인터넷에 날씨 검색을 했더니, 5월 6일자로 입하에 들어섰다고 한다.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로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후다.
봄과 여름 사이, 환절기는 꼭 미열을 앓고 있는 것만 같이 달뜨고 불편한 감정이 든다. 예상치 못하게 여름의 냄새가 훅 퍼질 때에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몇 가지가 있다.
여름이 되면 가족끼리 수영장에 놀러 가곤했다. 내가 살던 지역의 커다란 야외 수영장이었다. 그곳은 얕은 물과 깊은 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키가 작아 깊은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늘 얕은 물속에서 깊은 물에서 놀고 있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튜브가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호기롭게 깊은 물가를 서성였는데, 하필 어떤 대학생 무리의 손에 잡혀 예고도 없이 깊은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세 네 번 머리가 수면 바깥과 안을 드나들었을 때 쯤 그들은 단순히 장난이었다며 해명했지만 어린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 무리 중에 한 명이 겁에 질린 나를 알아채고선 물 밖으로 꺼냈고, 내팽겨치듯 홀로 물 밖에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맵고 뜨거운 목구멍 속 일렁이는 분노와 나약함으로 산산조각 부서지던 그때의 여름. 처음으로 크게 겁을 먹은 때였고, 이후로 겁을 먹을 때면 누군가 밀어 버리기 전에 스스로 깊은 물로 뛰어들어 버리곤 했다. 물론 본질적으로 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여름이 깊게 남긴 쓸쓸함은 가라앉아 있다가도 계절이 찾아오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에게 여름은 성장통을 앓고 있는 몸처럼 억눌린 통증이 시작되는 계절이라고 해야 할까. 실은 몇몇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여름은 정말 사랑할 수 없는 계절이다.
40도 가까이 육박하는 무더위는 걸어 다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이마에 맺히는 땀 때문에 애써 드라이한 앞머리는 볼품없어 진다. 자외선에 자극받아 올라오는 빨간 두드러기들은 얼마나 가렵고 신경 쓰이는지. 장마철 엄청난 비를 퍼부었다가도 다음날 뜨거운 태양빛을 쏟아 붓는, 시시때때로 날씨를 바꾸는 심술궂은 변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무력하게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오는 여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여름날 쓸쓸했던 여럿 기억들은, 트라우마를 마주할 때까지 그 쨍하고 눈부신 빛 속에서 잔인하게 빛나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이 눈부심을 마주해야 한다는 듯이.
상처는 아물 때 가렵다. 쓸쓸함을 긁다보면 애틋함으로 번진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서툴고 쓸쓸한 기억들이 여름이 지나 가는 동안 다시금 내면 깊이 가라 앉아 나를 이룬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변화할 때마다 쓸쓸함을 간직하는 내면의 깊이가 미묘히 깊어지고 있다. 그러니 봄과 여름 사이에서 그저 유유히 흔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