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봉 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300년<br/>숭덕전서 춘분대제·춘추대제 등 봉행<br/>남한 유일의 국전이라는 자긍심 느껴
홍살문을 지나 숭덕전에 들어서 시조인 박혁거세 왕의 65대손인 박효길 전참봉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래된 가구와 장식품들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낡긴 했지만 정성으로 다룬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파란색 의복을 갖춰 입은 채 마주한 전참봉의 얼굴에선 온화한 미소 속에서 숭덕전을 지키는 이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전 건강보험관리공단(경주-포항-울릉) 지사장을 지낸 그로부터 건네받은 명함에는 참봉 이전 삶을 보여주는 이력이 가득하다.
그중 송정문중이란 글자가 보인다. 울산 송정은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가 태어난 곳이다. 송정 문중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함께한 의사의 사업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통 전참봉의 임기는 2년이지만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3년째 봉직 중이다.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어떻게 참봉이 되는 것인가였다. 참봉이 되기 위해서는 종친 사업에서 쌓아온 활동들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활동들을 토대로 중앙의 상임위원회(신라오릉보전회)에서 토의를 통해 추대된다. 결정된 사항을 경상북도에 알리면 도지사의 임명장이 수여된다. 그리고 통상 2년의 임기 동안 숭덕전에 머무르며 생활하게 된다. 이를 수직봉심이라 하는데 이는 숭덕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한 곳에서 머무르며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남한 유일의 국전이라는 자긍심으로 지켜왔다.
다음으로 일반인에게 생소한 참봉을 역임하게 된 이유를 질문했다.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조부였다. 조부께서 선대 전참봉을 역임하셨다. 그 영향으로 본인 또한 오랜 기간 동안 문중일과 신라오능본존회 경주직할본부 회장 등으로 참여하다보니 어느덧 242대 전참봉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의 일과는? 전참봉 개인의 일과는 새벽 5시 기상으로 시작된다. 날씨 변화에 상관없이 매일 새벽 5시 일어나 6시부터 능을 돌며 네 번의 절을 하며 살피는 것을 임기 동안 행한다. 절을 할 때 왕은 네 번, 부처는 세 번, 일반 조상은 두 번인데 이는 왕의 위치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개인 일정 이외에 숭덕전 행사는 크게 춘분대제와 춘추대제가 있다. 이전에는 청명대제도 있었지만 춘분대제 이후 곧이어 이루어지는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동원되기가 쉽지 않아 지금은 앞의 두 대제만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전날 10개의 각 능을 돌보는 10명의 능참봉들이 찾아와 추보원에서 머무른다. 다음날 새벽 3시가 되면 준비를 시작해 숭덕전에 가서 인사를 드린다. 이후 각각 능에 예를 올린 다음 파손된 부위나 변화가 없는지 등을 점검한다. 전참봉은 이들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인 셈이다.
끝으로 숭덕전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낸 소감을 청했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 이곳으로 와서 당시 건강했던 모습으로 다시 나갈 수 있는 것은 이곳에 계신 왕들과 조상들의 은덕이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과거가 아닌 지금이라 밝힌 박 참봉. 그에게 숭덕전이 어떤 존재인가를 더 이상의 부연 설명 없이도 알 수 있게 하는 답변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기 마련인데 그의 소감은 이색적이며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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