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은 오전 10시에 문을 연다. 너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하기 위해 표를 끊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드넓은 박물관이 모두 무료라는 게 더 매력적이다.
신라 천 년의 역사를 전시한 상설전시관과 때마다 다른 전시를 여는 특별전시관을 보고, 신라미술관에 올라 잘 가꿔진 정원을 내려다보면 경주 일대의 절터나 궁궐터에서 발견된 석탑과 석등 같은 석물이 가득하다. 멀리 경주의 부드러운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오니 이렇게 너른 정원이 다시 없다.
두루 살피다 보면 한소끔 앉아 쉬고 싶어진다. 그럴 때 연못을 한 바퀴 돌면 건축가 김수근이 전통 창고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은 월지관이 나온다. 월지관은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한다.
벽돌 타일을 촘촘하게 붙여 만든 월지관 옆에 신라천년서고가 있다문을 열고 들어서면 높은 천장부터 보인다. 서까래와 기둥 보가 가로세로 잘 맞춰져 웅장함을 드러낸다. 도서관이라 하기엔 서가 사이가 넓고, 책도 여유 있게 꽂혀 있어 더 편안하게 만든다. 서가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앉을 자리가 있어서 각자 편한 자리를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 이 도서관을 만들 때, 도서관이 지니고 있어야 할 성격과 기능은 유지하면서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에게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하니 그 뜻이 충분히 느껴졌다.
이 도서관이 다른 도서관과 다른 점이 많지만, 더 특별한 것은 내부에 석등이 자리했다는 것이다. 고선사 탑 옆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신라천년서고의 얼굴이 되었다. 석등 뒤로 난 창은 대숲을 담아낸다. 김대환 학예사와 운영자인 사서, 그리고 건축가가 기획 단계부터 서로 제안하고 수용하며 발전시키며 협업한 결과이다.
소파에 앉으면 커다란 창을 통해 박물관 마당의 산수유와 목련이 만발한 풍경이 빛과 함께 들어온다. 1970년대 지어진 수장고는 차고 어두운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설계를 맡은 이화여대 건축가 김현대 교수는 일부러 창을 더 많이 내서 채광이 잘 드는 장소로 완성했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한 신라천년서고는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가 주관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2022년 골든 스케일 베스트 어워드 협회상’을 받았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신라천년서고는 신라의 역사문화 전문 도서관으로서 이용자들에게 차별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앞으로 북 토크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서관 이용시간은 월~금요일 오전 10시~ 오후 6시까지이며 낮 12시~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 동안 문을 닫는다. 서가에 책은 열람과 복사만 가능하고 관외 대출이 안 된다. 복사용지도 개인이 가져와야 한다. 이런 좋은 쉼 공간이 토, 일요일 및 공휴일은 열지 않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김순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