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중심으로 양쪽에 주재료가 돼지고기인 요리(국밥을 비롯한 각종 음식)를 만드는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경산의 명물 ‘돼지국밥 거리’다.
오후 2시. 점심시간이 지나서일까? 손님의 발길이 뜸했다. 마침 입구 안쪽에 위치한 영천식당 앞에서 주인인 듯한 어른이 국솥을 살피고 있어 그곳을 택했다.
“안녕하세요. 국밥 한 그릇 주세요.”
50년 동안 국밥을 만들어온 주인 임위자(80)씨는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에 이어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신다. 진한 국물과 고기가 가득한 섞어국밥에 총총 썰어 놓은 파를 한 큰 술 듬뿍 넣은 뒤, 새우젓으로 간을 한 국밥이다.
뜨끈한 국물을 먹어보니 꽃샘추위로 얼었던 속이 따뜻해진다. 잘 익은 깍두기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게 눈 감추듯 먹고 나니 갑자기 돼지 골목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이것저것 질문을 하자 “서서 그러지 말고 이리로 올라오라”며 친정엄마의 아랫목 같은 따뜻한 평상을 내어주고 담요까지 덮어주신다. 고운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예쁘고 정이 넘치는 임 대표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내 나이가 팔십이야. 이제 지나간 이야기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데...”라면서 사양하다가 결국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여기 온지 50년쯤 됐어요. 국밥 한 그릇에 2천원일 때 시작했는데 이제 8천원을 받네. 금방 시간이 흘렀어”라고 입을 뗀 임 대표가 말을 이어갔다.
해방 이후 경산군청과 경찰서, 등기소와 읍사무소가 생기고, 시외버스정류장도 만들어지면서 이 일대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고, 한둘씩 돼지국밥을 판매하는 식당이 생기며 형성된 것이 돼지골목이라고 한다. 그때가 1970년대 무렵이다.
1980년대엔 손님들이 늘면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공공기관과 경산시장의 중심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문을 닫는 식당이 늘었다. 2010년 즈음엔 새롭게 건물과 거리를 단장했지만, 현재는 예전에 비해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 상황이라고 했다.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으려고 줄을 서던 때도 있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급격히 손님이 줄었다”며 임 대표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중 기다리던 반가운 손님이 들어오자 인심 넉넉하게 또 한상을 차려낸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식사를 끝낸 사람은 MZ세대 전지헌(28)씨. “젊은 사람이 어떻게 알고 여기를 찾았냐”는 질문에 “어제 늦은 시간까지 과음을 해서 해장하려고 왔습니다”라며 웃는다.
“일주일에 두 번은 영천식당 돼지국밥을 먹어요. 저는 이곳 국밥이 제일 맛있더라고요. 할아버지 할머니랑 어릴 때부터 자주 왔어요. 국밥과 수육은 물론, 편육과 족발도 맛있고요”라는 게 전씨의 이야기였다. 전씨는 전통시장을 살리는 나름의 활성화 방안도 내놓았다.
“돼지골목 식당들이 만드는 음식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하면 좋겠어요. 역에서 가까우니 홍보만 잘되면 역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모이겠죠. 젊은이들도 돼지국밥을 좋아해요. 이곳에 대해 젊은이들이 알지 못하고 식당 주인들이 나이가 많으셔서 홍보가 약한데, 그 점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여기에 더해 전씨는 편리한 주차 공간 확보와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돼지국밥의 변신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 대표는 말을 이어가는 손자 같은 전씨의 손을 오래 잡고 있었다.
뼈를 6시간 우려낸 국물에 야들야들한 식감의 고기를 듬뿍 넣은 돼지국밥은 피로회복과 빈혈 예방에도 좋다니, 봄이 가기 전 경산 돼지골목으로 국밥 먹으러 한 번 더 가야겠다. /민향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