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내 경계 역할 담당 지하도<br/>평면화 작업 끝나 역사 뒤안길로<br/>
누군가 길을 물으면 그 곳이 기준점이 되었다. 경고 지하도에서 오른쪽, 왼쪽, 건너편. 그렇게 설명하면 자연스레 대화가 통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불편함의 대상이면서 안내자의 역할도 해냈다.
그리고 조금 더 우측에 위치한 곳은 경주역이 이정표 역할을 대신했다. 지하도는 시내에서 황오동 안쪽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큰 진입로였기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황오동에 위치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겐 교문 같은 등굣길이었다.
꽤 가파른 경사로 교복차림의 까까머리 무리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갈 때 지하도는 난코스 중에 난코스였다. 자전거와 자동차, 혹은 오토바이 간의 위험천만한 접촉사고도 간혹 일어났다. 사고 당사자는 자전거를 가족에게 뺏긴 채 걸어 다니게 되었지만 다른 일행들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두 바퀴로 달려 내려갔다. 지금보다 겁 없던 시절이었다.
지하도가 그곳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던 오랜 시간. 지나다닌 사람들이 달라지는 만큼 주변 가게들도 변화해갔다. 하굣길 학생들을 꼬치구이 냄새로 유혹하던 분식집. 초여름 문을 연 것으로 기억하는 음반 할인점. 그 당시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 했던 B612 테잎은 앨범 가게가 문을 닫은 이후에도 한참 동안 함께 했었다.
코너에 위치했던 약국. 의약분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이었을 것이다.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연예인 사진을 살 수 있었던 팬시점. 지금보다 문구류 가치가 높았던 시절 아기자기한 학용품에 소품까지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좁았지만 있을 건 다 있던 길 건너 작은 문구점. 어두컴컴하고 매캐한 냄새로 가득 차 있던 오락실. 주인이 몇 차례 바뀌더니 사라진 중국집. 그 사이 굳건히 살아남아 아직도 유명세를 떨치는 찐빵집. 모두 경고 지하도로 설명할 수 있던 장소들이다. 한동안은 발 아래로 추억이 계속 묻어날 것이다.
경고 지하도, 황오 지하도. 또 한 차례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익숙한 풍경 하나가 사라졌다. /박선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