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절이 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프로게이머를 불러다 면박을 주는 일들. 게임 속에서 사람을 죽이면 실제로도 사람을 죽이고 싶으냐고 묻고, 게임 머니를 얼마나 가지고 있냐 묻고,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냐고 묻고. 물론 그때엔 사회 전반적으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소했던 시기였긴 하다. 하지만 무례한 질문들을 던져댄 패널들의 모습이란, 무지가 얼마나 사람을 무례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런 질문들은 흡사 도박 중독자에게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지금은 사람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 그라운드 같은 게임의 흥행과 맞물려 한국 게이머들이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면서, 그들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 이제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싶냐는 등의 무례한 질문에 시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의 문화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면서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됐다. 많은 것이 변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게임 시장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종종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얼마 전 문제가 됐었던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조작 문제나, 과도한 과금 유도, 사행성 논란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이나 NFT를 융합하여 게임을 통한 수익 모델을 홍보하는 경우들을 보라. 이런 게임 시장의 세부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들이 게임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문화의 융성이나 즐거움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일부 게임이라 하기엔 대다수의 한국 개발 게임들이 비슷한 루트를 걷고 있기에 우리가 게임을 바라보는 인식은 어딘가 잘못됐다는 느낌이다.
게임은 문화인 동시에 산업이다. 더불어 하나의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것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수익 모델을 구성하고 이를 중요시하는 것이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돈이 벌려야 다음 게임도 만들고 할 테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것이다. 왜 게임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가. 게임으로 돈을 벌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흔히 캐시 카우로 불리는 일부 게임을 통해 게임사는 과연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물론 모든 게임사가 그렇다는 건 일반화의 오류다. 분명 적지 않은 회사들이 더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회사들은 게임을 단지 돈으로 밖에 바라보지 않는다. 익명 게시판에 달린 수많은 게임회사 직원들이 게임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라. 그들은 게이머들을 단지 호구로만 바라볼 뿐, 자신들이 이끌어가는 문화의 향유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의 게임 회사들이 이런 관점으로 유저들을 바라본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2010년대만 해도 동아시아 게임 산업을 이끌어간다고 평가받던 한국 게임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가. 이제 한국 게임은 더 이상 동아시아 게임 업계의 강자가 아니며, 단지 뽑기를 비롯한 사행성 게임과 과도한 과금 유도에 주력할 뿐인 도박성 게임만이 판치는 국가란 인상이 강하다. 그 10년 사이, 중국과 일본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꾸고 스타일을 만들어갔던 것과 대조된다.
그와 같은 국가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게임 회사가 유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한국 게임 회사는 좀처럼 유저들이 왜 게임을 하는가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단지 유저들이 비교 우위를 통한 우월감을 원해 게임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근 10년 사이에 변화한 탓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단지 그것만이라기 보단, 게임 회사가 자신들의 상품의 목적과 판매 방식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유저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으니까. 그건 단지 비교 우위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사적, 시각적, 청각적 재미나 손맛이라 불리는 컨트롤의 재미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게임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유저들이 원하는 건 그처럼 다양한 재미지, 단순히 내가 남들보다 강하다는 느낌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 게이머들은 점점 한국 게임을 떠난다. 재미의 요소는 보강하지 않으면서 돈을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한국 게임 회사들에 지쳐서. 유저를 단지 돈주머니로 바라보는 게임회사들에 정이 떨어져서. 이게 단순히 게임의 문제뿐인 것은 아니다. 문화를 하나의 시장으로 바라볼 때는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한국 게임 업계의 몰락은 이런 태도의 부재가 어떻게 시장을 망가뜨리는가에 대한 선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