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분단 서도이칠란트로 유학을 떠난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난생처음 타본 비행기가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경유(經由)해 북극항로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당시 한국 여권의 결혼 관련 질문은 두 가지였다. 미혼이냐 기혼이냐, 그것이 전부였다. 나 역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당연하다 여겼다. 그런데 도이칠란트에 가보니 당연한 것이 당연지사가 아니었다. 문화적 충격이 쿵, 하고 다가왔다.
유럽의 유일 분단국가 서도이칠란트의 여권에 기록된 결혼 관련 질문은 다채로웠다. 미혼, 기혼, 이혼, 별거, 동거, 미혼모, 미혼부 같은 여러 항목이 기재돼 있었다. 당시 나로서는 경천동지할 일이었고, 전연 이해할 수 없는 요지경의 세상이었다. 이혼조차 낯선 것인데, 거기에 별거와 동거, 남편과 아내가 없는 미혼모와 미혼부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가 같은 하늘 같은 시간에 버젓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서론이 길어진 까닭은 미국의 CNN 방송이 지적한 한국의 저출생 국가 면모에 대한 보도 때문이다. 주지하듯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지난 3분기 기준 0.79명이다. 안정적인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의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의 1.6명이나 일본의 1.3명보다도 현저하게 낮은 출생률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짚은 CNN의 분석이 폐부를 찔러왔다. 지난 15년 동안 225조 원, 해마다 15조 원의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도 실패한 저출생의 원인을 지적한 게다.
CNN 방송 보도에 내가 크게 공감한 까닭은 ‘부모의 자격’에 관한 지적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기를 갖는 것은 젊은 이성 신혼부부에게는 기대하는 일이지만, 그 외의 가정은 자녀를 기를 자격이 없다. 미혼여성에겐 체외수정이 제공되지 않고, 동성결혼은 인정하지 않으며, 사실혼 관계의 부부는 입양할 자격조차 없다. 이것이야말로 출생에 관한 청교도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명쾌하고 통렬한 정답이다. 근데 언제부터 한국이 청교도의 나라가 되었는가?!
결혼과 가족 그리고 부부의 형식에 관한 성찰이 배제된 채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문제의 발원지다. 조선 시대의 권위적이고 남성 중심의 전통적인 결혼관이 지배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 문제의 근원이다. 1820년대 팡틴이 코제트를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맡겨야 했던 프랑스의 미혼모 문제가 200년 뒤에 자칭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혼자 살거나 동성애 부부로 살면서 아이를 입양하여 가족을 구성할 수 있고, 결혼과 무관하게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미혼모와 미혼부가 가능하다는 가족문화가 인정되어야 한다. 이른바 ‘정상’이란 틀 안으로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끌어들이려는 시대착오적이고 경직된 시선으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단일민족신화’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21세기를 살면서 결혼과 가족에 관한 국민의 의식은 아직 19세기에 정체돼 있음은 신비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참에 우리의 후진성을 깊이 성찰해봄은 어떨까, 생각한다.